美 시에라 벤처스 “AI는 기술보다 실행력”… 스타트업 투자도 전략 분화

| 김민준 기자

인공지능(AI) 기술이 벤처투자 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가운데, 미국 초창기 스타트업 투자사 시에라 벤처스(Sierra Ventures)가 AI 스타트업 투자 전략을 정교하게 분류한 독자적 프레임워크를 공개했다. 이들은 AI 시장을 총 다섯 개의 층위로 나눠 접근하면서 핵심적인 투자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자본집약적 인프라보단, 실제 문제 해결력과 서비스 확장을 중심으로 한 ‘응용형 AI’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에라 벤처스의 공동대표 티머시 굴레리(Tim Guleri)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전 기술 사이클에서는 혁신보다는 효율성이 중시됐지만, 생성형 AI는 가능성의 예술로 전환을 이끌고 있다”며 “이제 중요한 건 아이디어 자체보다는 팀의 실행력과 문제해결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AI 붐이 단기 유행이 아닌 구조적인 전환에 가깝고, 특히 글로벌 16억 명 이상의 개발자가 AI 기반 제품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AI 혁신이 모든 산업에 걸쳐 확산될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시에라는 ‘AI 레이어드 케이크(Layered Cake)’라는 이름의 전략 틀을 기반으로 AI 스타트업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이 중 첫 번째 계층인 GPU, 데이터센터 등 범용 인프라에 대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들기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는 지양하고 있다. 대신 두 번째 층인 ‘응용 인프라’와 세 번째 층인 ‘수평형 솔루션’, 네 번째 층인 ‘산업 특화형 AI’, 마지막으로 ‘완전히 새로운 AI 응용 모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 사례로는 개인화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전환율을 끌어올리는 ‘시뮬레이트 AI(Cimulate AI)’, 대형 기업의 법무비용을 절감하는 ‘에우디아(Eudia)’, 보험 언더라이팅 자동화를 제공하는 ‘위브.ai(Weav.ai)’ 등이 있다. 한편 마지막 다섯 번째 층에 해당하는 바이오 스타트업 ‘레발리아 바이오(Revalia Bio)’는 기증된 인간 장기를 이용해 의학 연구를 가속화하고 새로운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도전적인 모델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AI가 전 세계 경제 전반에 가져올 파급력은 실로 방대하다. 굴레리는 “전 세계 GDP는 약 110조 달러(약 15경 8,400조 원)에 이르지만, 이 중 농업을 제외한 서비스 및 산업 전체 약 104조 달러는 AI로부터 직접적인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AI 인프라 시장은 현재 약 500억 달러(약 72조 원) 규모로 추산되며, 연간 25%씩 성장해도 여전히 글로벌 GDP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앞으로 수십 년간 엄청난 시장 창출이 가능함을 뜻한다.

시에라 벤처스는 현재 2023년 9월에 조성된 2억 6,500만 달러(약 3,816억 원) 규모의 13번째 펀드를 운용 중이다. 굴레리는 “우리는 향후 3~5년을 내다보며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며 “지금은 IPO 시장이 얼어붙어 있지만, 다시 유동성 장이 열릴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시기”라고 설명했다. 변화의 파고를 넘어 진정성을 갖춘 팀과 기술을 발굴하겠다는 시에라의 접근은 AI 투자 경쟁이 과열되는 현시점에서 투자 트렌드와 상품화 성숙도 기반의 실용적 전략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