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투자회수 공식 깨졌다…세컨더리 마켓이 대안 되나

| 김민준 기자

벤처 캐피털 시장에서 오랫동안 ‘유동성 부족은 결함이 아니라 장점’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상장이나 전략적 인수를 기다리는 장기 인내의 대가로, 공모 시장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같은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민간 자본이 스타트업 시장에 유입되면서, 투자 회수 시점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한 기업들이 잇단 후속 투자를 유치하며, 초기 투자자나 직원이 실질적인 수익을 거두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성장 단계에서의 우선주 구조는 후속 투자자에게 일방적 보장을 제공하지만, 초기 이해관계자들의 몫은 점점 줄어든다. 설령 IPO에 도달하더라도 공모가는 통상 마지막 투자 라운드보다 낮게 책정되는 일이 많아, 기대한 만큼의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처럼 비상장 상태가 장기화되고 회사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제한되면서 ‘가격’과 ‘가치’ 간 괴리는 확산되고 있다.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매출 배수나 외형적 수치 중심의 평가가 이뤄진 탓이다. 그 결과, 궁극적 회수 수단인 상장 또는 인수합병(M&A)에서 엇갈린 평가가 이뤄지고, 전반적인 초과 수익 실현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은 벤처펀드의 본질적 위기를 야기한다. 다행히 일부 선도 운용사들은 ‘세컨더리 마켓’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비상장 상태로 길게 존속하면서 초기 투자자 입장에서 IRR(내부수익률)과 기간을 고려한 전략적 회수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투자 총액 대비 수익률(TVPI)이 아닌 회수 시점을 최적화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또한 포트폴리오 기업의 성장 속도가 빨라질수록, 초기 투자자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희석 방지나 이사회 참여, 경영진과의 네트워크 유지도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지분이라도 매각해 회수하는 것이 펀드 총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건전한 선택일 수 있다.

최근에는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멀티 스테이지 VC들의 등장으로 세컨더리 마켓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이들은 기대 성장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기업을 다시 위험에 노출시키는 형태의 ‘리리스크(재위험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시점이야말로 초기 투자자가 일부 지분을 유동화해 현실적인 수익을 확보할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벤처펀드의 수익 곡선을 살펴보면, 펀드 결성 후 8년 차를 넘어가면 포트폴리오의 가치 성장은 둔화된다. 따라서 초기 3년간의 투자 시기를 전제로 하면, 5~7년 차에 일부 지분 매각 전략을 검토하는 것이 이상적인 흐름일 수 있다. 단, 각 펀드와 개별 투자 케이스마다 상황은 상이하므로 맞춤형 판단이 유지돼야 한다.

결국 VC 업계는 ‘기본적으로 보유, 기회 있을 때만 일부 매각’이라는 전통적 접근에서 벗어나 ‘기본적으로 매각 고려, 예외적으로 장기 보유’ 전략으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이는 단기 수익률 개선뿐 아니라 장기 리스크 분산, 그리고 출자자들에게 더 신뢰받는 운용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중요한 대응 전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