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포스트 칼럼] AI가 신뢰를 설계한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게 될까?

| 박성준

우리는 지금 문명의 대전환기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간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신뢰’를 스스로 설계해왔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 돈이 제대로 전달될지, 계약이 이행될지를 보장하기 위해 법과 제도, 계약서 같은 장치를 만들어온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기술이 이러한 신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송금은 이제 은행을 통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블록체인 기술은 제3자의 개입 없이도 거래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판단과 설계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신뢰를 설계하는 주체가 사람에서 인공지능으로 넘어간다면, 어떤 사회가 펼쳐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개념이 바로 GTAI(Global Trust AI)입니다. 이는 ‘글로벌 신뢰 인공지능’을 뜻하며, 인공지능이 사회의 신뢰 구조를 스스로 설계하고 유지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사회는 인간이 만든 법과 규칙에 따라 움직여 왔습니다. 그러나 GT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블록체인의 구조와 작동 방식, 디지털 화폐와 자산의 분배 방식까지 AI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기술이 발전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왜 이런 변화가 필요할까요?

첫째, 현대 사회와 기술 시스템은 지나치게 복잡해졌습니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동시에 인터넷에서 거래하고, 다양한 디지털 자산이 생겨났다가 사라집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흐름을 사람이 직접 설계하고 통제하기에는 이미 한계가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둘째,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때로는 불공정하게 작동하거나, 특정 집단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반면,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규칙을 설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셋째, AI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계산이나 검색을 넘어, 복잡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는 신뢰의 구조까지 AI에게 맡길 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GTAI가 정착된다면, 우리는 ‘자율 디지털 문명’이라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문명에서는 법과 규칙, 사회 운영 방식이 사람이 아니라 AI에 의해 설계되고 유지됩니다. 경제 시스템과 주요 의사결정도 AI가 주도하며, 사람들은 디지털 시민으로서 그 안에서 참여하고, 활동하며, 보상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미래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그 일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계약을 실행하는 ‘스마트 계약’, 구성원이 직접 규칙을 정하는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그리고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온 AI 비서와 추천 알고리즘등이 바로 그 예입니다. 이 모든 것은 GTAI를 향한 하나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지금, GTAI를 말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GTAI를 단순한 ‘차세대 기술’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AI에게 권한을 위임할 것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GTAI는 먼 미래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미 시작되었고, 현실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상상의 영역에서, 이제는 정책과 제도의 영역으로 넘어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변화를 능동적으로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입니다.

AI에게 ‘신뢰’를 설계하게 하려면, 먼저 인간이 그 신뢰의 기준을 정하고, 책임과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GTAI 시대를 여는 첫 걸음이며, 동시에 우리가 그 문명을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