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펀드 폭증에도 출구는 막혔다… VC 산업의 역설

| 김민준 기자

벤처캐피털(VC)의 가장 큰 역설 중 하나는 투자자들이 확장 가능한 사업 모델을 집착하듯 찾는 반면, 정작 자신들의 산업은 효율적인 확장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아무리 많은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두 번째 페이스북이 나타나는 확률이 정비례해 증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투자처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벨류에이션은 과열되며, 스타트업의 자금 소진 속도는 빨라지는 부작용이 생기곤 한다.

이처럼 구조적 한계가 있음에도 VC 펀드는 시간이 갈수록 ‘덩치’를 키워왔다. 10년 전만 해도 드물던 10억 달러(약 1조 4,400억 원) 이상급 ‘메가펀드’는 이제는 흔치 않지만 낯설지는 않은 존재가 됐다. 특히 글로벌 유명 VC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이 기간 동안 눈에 띄게 증가했다.

Crunchbase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 내에서 5억 달러(약 7,200억 원) 이상 규모의 VC 및 성장주 중심 펀드가 얼마나 부풀어 올랐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이를 분명히 증명한다. 2022년까지는 메가펀드 결성 규모가 꾸준히 증가했다. 그 해 이후 투자 시장 조정과 과거 호황기에 조성된 ‘드라이 파우더’로 이어진 일시적 둔화가 있었지만, 2024년 들어서는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한 금액이 다시 메가펀드로 몰렸다. 2025년에도 이 흐름은 소강상태지만 유지되고 있다.

가장 큰 펀드를 조성한 플레이어들의 면면도 눈길을 끈다. 인사이트 파트너스는 4년 연속 최대 규모 펀드를 기록했으며, 제너럴 캐털리스트 역시 대형 벤처 투자 외에 부채 및 세컨더리 마켓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나 시쿼이아캐피털의 경우 비거주자 혹은 에버그린 펀드 구조 등의 이유로 이번 집계에서 제외됐다.

또한 여러 펀드를 동시에 대규모 결성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액셀은 2016년 약 29억 5,000만 달러(약 4조 2,500억 원)의 자금을 일반 및 지역별 펀드로 나눠 조성했고, 시쿼이아캐피털은 2017년 40억 달러(약 5조 7,600억 원), 2018년에는 무려 76억 달러(약 10조 9,400억 원) 이상을 끌어모았다. 2022년에는 앤드리센 호로위츠가 140억 달러(약 20조 1,600억 원) 이상을, 라이트스피드는 65억 달러(약 9조 3,600억 원)를 각각 모으며 정점을 기록했다.

이처럼 수년간 대형 펀드가 쏟아지며 지금 시장은 자금력 면에서는 전례 없이 강력한 상태다. 특히 생성형 AI처럼 핫한 분야에선 수천억 원 단위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으며, 치열한 투자 유치 경쟁에서도 살아남은 스타트업에는 막대한 현금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아직 부진한 IPO 시장과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인수합병(M&A) 정체 속에서 벤처 자산군의 성과 회수, 즉 ‘엑시트’는 여전히 난제다. 유니콘으로 남아있는 수많은 비상장 기업들이 빠르게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산은 쌓였지만 출구 전략이 없는 VC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벤처 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스타트업의 상장 시기가 점점 늦어지는 구조적 지연에도 불구하고 펀드 투자에 대한 열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 열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