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시장의 급등락 속에서도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자금을 유치한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이후 수년간 추가 투자를 받지 못했던 수십 개 스타트업이 2025년 들어 대규모 자금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자금 조달 없이 자산을 활용해 연명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않는 밸류에이션 탓에 투자를 성사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최소 18개 이상의 유니콘 창업기업이 2021년 이전 투자 이후 올해 새로운 자금을 끌어왔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단순한 소규모 투자가 아니라 대형 라운드 자금을 확보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대표 사례는 AI 기반 문서 교정 서비스 기업인 그램말리다. 이 회사는 최근 제너럴 캐탈리스트로부터 총 10억 달러(약 1조 4,400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이 투자 이전까지 그램말리는 총 4억 달러의 누적 투자를 받은 상태였으며, 마지막 투자 유치는 2021년에 이루어졌다.
또 다른 주목할 사례는 헬스케어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이노백서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은 올해 초 시리즈F에서 2억 7,500만 달러(약 3,960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마지막 투자도 2021년으로, 약 3년여 만의 복귀다.
우주기술 분야의 스타트업 로프트 오비탈도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회사는 위성을 빠르게 궤도에 진입시키는 서비스를 플랫폼화해 사업을 확장 중이며, 올해 1억 7,000만 달러(약 2,45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 발표에는 정확한 기업가치가 공개되지 않았다. 비공개된 밸류에이션은 추정과 궁금증을 낳고 있다. 지난 수년간 과도하게 부풀려졌던 2021년 당시의 평가를 감안할 때, 적지 않은 기업들이 자산 가치 삭감을 감수하며 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보인다.
투자 규모도 눈에 띄게 줄어든 경우가 많다. 자율운항 해양 드론을 개발하는 세일드론은 지난달 덴마크 정부 산하 투자기금으로부터 6,000만 달러(약 860억 원)를 조달했다. 이는 불과 4년 전 1억 달러를 끌어왔던 것에 비하면 훨씬 적은 규모다. 운송 최적화 플랫폼 플록 프레이트는 시리즈E에서 같은 액수인 6,000만 달러를 유치했지만, 2021년 시리즈D에서는 2억 1,500만 달러를 확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공백 이후의 투자 유치는 여전히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시장의 냉각기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한 소수 기업들은 투자자들로부터 여전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부 기업은 사업 방향을 극적으로 전환하거나, 적정 수준 이하의 밸류에이션을 수용하면서까지 생존을 선택했다.
2021년 정점을 찍은 벤처 시장이 본격적인 재편 국면에 접어든 지금, 수년간 자금 유치가 없던 스타트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고 있는지, 그 사례를 통해 전체 시장의 실질적 회복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