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 않아도 즐겁다… 무알코올 주류 시장에 돈 몰린다

| 김민준 기자

여름철이면 시원한 음료 한 잔이 절실한 계절이지만,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취하지 않고도 기분을 낼 수 있는 선택지를 선호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전 세계 무알코올 맥주 판매량은 전년 대비 9% 증가했고, 올해는 해당 시장이 에일을 제치고 두 번째로 큰 맥주 카테고리가 될 전망이다.

이 같은 흐름은 맥주에 그치지 않는다. 편의점의 주류 진열대는 이제 무알코올 와인과 증류주 제품으로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트렌디한 ‘목테일(mocktail)’을 전문 메뉴로 선보이는 바도 늘고 있으며, 와인 시음 투어조차 무알코올 제품으로 구성이 가능한 시대다.

시장 확장을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스타트업들이다. 다양한 술 대체 음료를 제조하는 신생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최근 수년 사이 수천억 원 규모의 자금이 이 시장으로 유입됐다.

대표 사례는 애슬레틱 브루잉(Athletic Brewing)으로, 미국 전역의 슈퍼마켓과 레스토랑, 바 등에서 무알코올 수제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특히 홀푸드에서 이 브랜드의 제품은 일반 맥주보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다. 밀퍼드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은 벤처캐피털 제너럴 애틀랜틱을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현재까지 약 2억 5,000만 달러(약 3,6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기업 가치는 약 8억 달러(약 1조 1,500억 원)로 평가받는다.

무알코올 주류라고 해서 소비 대상이 전적으로 금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평소 음주를 즐기는 소비자들도 숙취, 졸림, 운전 등 여러 이유에서 상황에 따라 술이 없는 음료를 혼합해서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맛의 진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과거 무알코올 맥주나 칵테일은 닮은 듯 전혀 다른 맛으로 외면받았지만, 최근 제품들은 퀄리티 면에서 기존 주류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프리미엄 원료, 소량 생산, 장인 정신 등의 요소를 강조한 고급 마케팅 전략이 더해지며 소비자의 지갑을 연다.

예컨대, 라이어스 스피릿(Lyre’s Spirit)은 세계 각지에서 추출한 천연 향료와 증류소재를 이용해 실제 술과 비슷한 맛을 내는 무알코올 증류주와 칵테일을 만든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6,800만 달러(약 980억 원) 이상을 조달했으며, 1병 38달러(약 5만 4,000원)의 무알코올 진을 판매하고 있다.

와인 쪽에서는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프렌치 블룸(French Bloom)이 눈에 띈다. 미슐랭 가이드 전직 이사와 슈퍼모델이 공동 창업한 이 스타트업은 ‘행사를 위한 와인’을 표방하며,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로 만든 무알코올 스파클링 와인을 출시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유행을 넘어 새로운 소비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파티나 나들이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알코올 자체가 아니라, 그 순간을 둘러싼 ‘경험’이라는 점에서 무알코올 음료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고기 굽는 옆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거나 수영장 옆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장면이 술이 없어도 충분히 구현되는 시대다.

술에 취해도 즐겁지만, ‘술 없이 즐기는 음료’가 메인 트렌드로 자리 잡는 지금, 테크 스타트업과 소비 패턴 변화를 주시하는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이 시장을 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