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의 가장 위험한 착각… 유연한 척하지만 경직된 ‘내면 독재’

| 김민준 기자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본질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지닌 집단이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쫓기 위해 필연적으로 전략을 바꾸고 실험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창업자 본인 스스로는 유연성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오히려 구조적인 경직성과 판단 지연, 혼자만의 결정을 고수하며 ‘변화의 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잦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유연하게 보이는 창업자들조차 실제로는 경직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동료나 투자자들의 행동 평가를 종합한 데이터에 따르면, 많은 창업자들이 새롭고 낯선 경험에 마음을 닫고, 과거의 성공 패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의사결정을 내릴 때도 스스로를 이미 ‘완성된 리더’로 여기며 외부 조언을 기피하고 틀린 결정을 수정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일을 회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런 태도는 특히 모호함에 대한 낮은 인내심과 연결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환경은 불완전한 정보와 불투명한 미래를 전제로 움직이는데, 일부 창업자들은 이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강박적으로 정답을 찾으려 한다. 그 결과 ‘분석 마비’에 빠지거나 지나치게 단정적인 결정을 내리며 조직의 창의성을 억누른다. 심지어 중요한 변화가 있거나 조직 구조가 바뀌었을 때 구성원들과 소통조차 피한 채 비공식적 경로를 선택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동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창업자가 고자세를 취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불안하고 폐쇄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점도 문제다. 성과에 대한 강박과 변화에 대한 불신이 결합돼, 리더가 ‘의심 많은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소통을 차단하고 중대한 결정 사항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동시에 허약한 자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팀워크는 무너지고, 핵심 구성원들은 마음속으로 리더의 결정을 지지하지 않은 채 침묵 속 저항에 나선다.

이 모든 악순환의 중심에는 ‘무능한 리더’가 아닌, 권한 위임을 못하는 리더가 존재한다. 훌륭한 팀을 꾸려놓고도 ‘직접 해결’을 고집하거나, 성과가 더딘 팀원에게는 실망감을 대놓고 표시하며 협업 시스템 자체를 손상시킨다. 시간에 쫓기고 빠른 판단만을 강조하다 보니, 피드백을 소화할 여유조차 없고 결국 역량 있는 인재마저 리더의 방식에 실망해 떠나는 사례도 나온다. 창의적인 조직문화가 탄력을 받기 이전에 생동감을 잃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업자 스스로의 ‘애고’(Ego)를 의식적으로 낮추는 노력이 핵심이다. 회의 자리에서 한 번쯤은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모든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모호함을 긍정하는 태도를 훈련해야 한다. 지속적인 학습과 독서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고, 조직 내 대화의 빈도를 늘리는 것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벤처 생태계에서 창업자의 유연성은 단지 미덕이 아니다. 역동적 조직을 이끄는 실질적인 역량, 곧 생존 전략이 된다. 변화에 민감한 투자자와 소비자, 기술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리더는 자신의 사고 구조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유연성이란, 스타트업의 성장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이며 창업자의 리더십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