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적극 편입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갈림길에 서 있다. 제도는 정비됐지만, 실행은 요원하다. 웨이브브릿지(Wavebridge)가 최근 발간한 리포트 ‘Bitcoin Treasury 101’는 글로벌 사례를 통해 비트코인의 전략적 가치와 국내 기업이 마주한 구조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분석한다.
■ 글로벌은 ‘비트코인 경영’…전략자산으로 진화한 BTC
보고서는 비트코인이 단순한 투기 자산을 넘어 기업의 재무 전략, 나아가 사업 전략까지 아우르는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MicroStrategy), 블록(Block Inc.), 테슬라(Tesla), 넥슨(Nexon) 등 주요 기업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비트코인을 자산 구성에 통합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자사 시가총액의 60% 이상을 비트코인으로 채우며 “비트코인 중심 경영”(Bitcoin-Native Enterprise)을 실현 중이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이 자산가치와 주가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신주·전환사채 발행→재매입으로 이어지는 순환형 재무 구조를 구축했다.
■ 국내 기업, 제도는 마련됐지만…실행은 ‘그림자’
한국은 2023년 이후 회계 및 규제 측면에서 진전을 보여왔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2월 법인의 비트코인 투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K-IFRS 회계처리 지침도 2023년 말 마련됐다. 이에 따라 기업은 비트코인을 무형자산으로 분류해 일정 기준 하에서 보유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실행은 여전히 저조하다. 개인의 가상자산 투자 비율은 35%에 달하지만, 국내 상장사의 비트코인 보유 규모는 3,000억 원 수준으로 전 세계 대비 미미한 수준이다.
보고서는 그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1. 지배구조 리스크: 한국 대기업은 수직적 지주회사 체제하에 있어 그룹 전체의 재무 안정성을 중시한다. 하나의 계열사가 비트코인에 투자해도 그룹 전체의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어 선뜻 실행하지 못한다.
2. 세대 간 인식 격차: 임원층 75%가 50대 이상으로, 비트코인 투자 경험이 없거나 부정적 인식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3. 이해관계자 설득 부담: 투자 성과가 불확실한 가운데, 주주총회·이사회 등에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장애 요인이다.
■ 전략, 두 갈래…“마이크로스트래티지형 vs 넥슨형”
리포트는 비트코인 도입 전략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1. 공격형(비트코인 중심 경영)
대규모 자금조달로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기업가치와 연동시키는 방식. 마이크로스트래티지나 일본의 MetaPlanet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고위험·고레버리지 구조로, 가격 하락 시 신용등급 하락과 유동성 악화라는 위험이 크다.
2. 보수형(포트폴리오 다각화)
잉여현금을 활용해 1~5% 수준으로 비트코인을 편입하는 방식. Fidelity 분석에 따르면 60:40 포트폴리오에 BTC를 3%만 편입해도 위험 대비 수익률(샤프 지수)이 개선된다. 넥슨은 이 전략을 실제 실행해 대표적 국내 사례로 평가된다.
■ 회계·신용평가·성과지표까지 바꿔야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채택하면 기존 재무지표(RoE, RoA)만으로는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mNAV(비트코인 순자산가치 배수), BTC Yield(연간 운용 수익률), BTC Torque(레버리지 민감도) 등 신지표가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와 애널리스트에겐 생소해, 기존 지표와 병행한 공시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도 리포트는 강조한다.
■ “지금이 골든타임”…후발주자의 전략적 기회
리포트는 결론적으로 지금이 한국 기업에 있어 “마지막 골든 타임”이라고 평가한다. 미국 등 해외에서 제도·회계·시장 신뢰가 이미 정착된 만큼, 한국은 글로벌 사례를 참조해 시행착오 없이 도입할 수 있는 환경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소규모 편입으로 시작해 내부 합의와 데이터 축적을 진행하고, 점진적 확대를 통해 재무 안정성과 브랜드 신뢰를 모두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