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벗’, 회피 아닌 전략이다…스타트업 생존의 진짜 시험대

| 김민준 기자

스타트업이 방향을 전환하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피벗(pivot)은 단순한 전략 수정이 아니다. 이는 제품과 시장의 궁합, 궁극적 생존 가능성을 검증하는 반복 실험이다. Sibe.io 공동창업자인 예브게니 하피조프는 자사 플랫폼 진화 과정을 통해 이를 직접 경험했다. 초기 협업 툴에서 제품 수명주기 관리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최소 다섯 차례 피벗을 거쳤고, 그때마다 가설 수립과 테스트, 분석을 통해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그는 우선 ‘고객 획득 비용’과 ‘고객 생애 가치’를 비교해 수익성의 구조적 한계를 파악했다. 초기에는 광고 대행사를 타깃으로 했지만, 구매 의사는 미미했다. 이어 게임 개발사 시장에 도전했으나, 대형 스튜디오는 자체 솔루션을, 인디 개발자는 비용을 꺼리는 구조적 양극화 시장이었다. 실제 구매 고객층은 너무 얇아 수익 기반이 불안정했다.

이후 구체적인 수요가 보였던 건설산업과 디자이너 계층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제품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했고, 이미 강력한 경쟁자들이 선점한 시장에서 자원 부족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고객들이 제품을 정기적으로 사용할 만한 ‘지속적 고통’이 없었다. 예컨대 건설 현장의 점군(point cloud) 및 3D 데이터는 빠르게 구식이 되었고, 현장 엔지니어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아 실사용 빈도가 현저히 낮았다.

스타트업이 피해야 할 함정 중 하나는 고객의 ‘호감’을 ‘지불 의사’로 착각하는 것이다. 제품을 두고 “멋지다”, “대단하다”는 반응은 실제 구매와 무관하다는 것을 실증 사례는 말해준다. 진짜 핵심은 반복적 사용성과 고객 행동에 있다. 이를 통해 제품 가치를 내면화해야 지속적인 유료 전환이 가능하다.

결국 스타트업이 집중해야 할 지점은 거대한 시장보다는 비효율을 만드는 틈새다. 하피조프는 지멘스 Teamcenter나 솔리드웍스 PDM 같은 공룡 솔루션과 정면 승부하길 포기했다. 대신 이들 대기업이 놓치고 있는 빈틈, 예컨대 특정 기능이 과잉이거나 중요한 데이터를 다루기엔 느리고 유연하지 못한 점 등에 주목했다. 성공 피벗이란 경쟁자의 취약 포인트, 그리고 고객 불편이 실질 매출로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 대응하는 일이라는 의미다.

그는 "실패한 가설은 결코 좌절이 아니다. 오히려 고도화된 제품을 설계할 수 있도록 명확한 방향을 제공한 자료였다"고 강조한다. 제품과 시장 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궁합은 집중과 반복을 통해 결실을 맺는다. 스타트업에 있어 피벗은 회피가 아닌, 성장의 필수적인 전략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