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벤처 투자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5년 2분기 기준 전 세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910억 달러(약 130조 8,400억 원)를 기록, 전년 대비 11%의 증가율을 보이며 회복세를 확인했다. 특히 사상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이는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전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크런치베이스가 인용한 각 벤처캐피털(VC)의 분석에 따르면, AI 열풍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구조적인 자본 흐름의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메를로벤처스(Menlo Ventures)의 파트너 맷 머피는 "모든 투자자들이 AI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서두르며, 애플리케이션과 인프라 전반에 걸쳐 급속한 자금 유입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회사 측은 지난해 초 오픈AI(OpenAI)의 경쟁사인 앤트로픽(Anthropic)의 4억 5,000만 달러(약 648억 원) 규모 시리즈 C 라운드에 참여했고, 올해에는 AI 특화 펀드 ‘앤솔로지 펀드’를 출범시켰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파운더스펀드(Founders Fund)의 로버트 빈더샤임 역시 "AI는 인터넷 이후 가장 중요한 기술 진보로, 모든 시장의 성장 동력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분야별 도메인 특화 데이터에 대한 강화학습 방식이 새로운 제품 개발을 가능케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AI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베인캐피털벤처스(Bain Capital Ventures)의 파트너 애비 마이어스는 "AI가 거의 모든 산업에 진입하고 있지만, 허상이나 과장된 기대에 기반한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며 단일 기업보다는 각 산업군 내 우량 기업 선별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녀는 "AI는 여전히 초기 단계이며, 향후 수 세대에 걸쳐 새로운 시장이 계속해서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자 전략 면에서는 '모두가 AI에 올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맷 머피는 "우리는 모든 투자가 AI로 차별화되길 원한다"며, 비AI 기반 스타트업은 향후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대신, 국방 기술이나 AI 외 영역에서 혁신을 보이는 기업에 대한 잠재력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클린에 기반을 둔 레프트레인캐피털(Left Lane Capital)의 하일리 밀러 대표는 "투자자들은 이제 실적 기반의 검증된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며, 지난 2년간의 밸류에이션 하향 조정이 시장의 체력을 되살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AI 관련 스타트업의 과도한 가치 급등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AI 스타트업들은 전례 없는 속도로 연속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앤트로픽은 불과 6개월 만에 기업가치를 600억 달러(약 86조 4,000억 원)에서 1,700억 달러(약 244조 8,000억 원)로 끌어올리며 투자자들의 높은 기대감을 반영했다. 머피는 "6~12개월 내 후속 라운드를 유치하는 사례가 일반화되고 있으며, 이는 분명 과열의 신호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공개(IPO) 시장도 이 같은 AI 열기에 편승해 일부 기업의 성공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서비스타이탄(ServiceTitan), 차임(Chime), 피그마(Figma) 등은 상장 첫날 큰 폭의 주가 상승세로 주목을 받았고, 코어위브(CoreWeave)와 같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공개 기업들도 꾸준한 시장 반응을 얻고 있다. 투자자 기대심리는 고조되고 있으나, 마이어스는 "모든 기업이 피그마처럼 완성도 높은 IPO를 할 수는 없다"며 냉정한 현실 인식도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앞으로 전력, 반도체, 제조업, 공급망 등 AI 인접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가 교역 기반 비즈니스 모델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데이터 활용과 효율 극대화를 달성한 AI 기반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AI 중심의 시장 낙관론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차별화되지 못한 AI 스타트업은 곧 사양 경쟁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전하고 있다. AI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 시장을 지배하는 중심 기술이며, 투자자들은 이에 맞춰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