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부호이자 오라클 공동창업자인 래리 엘리슨이 전통적인 자선재단 방식 대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모델을 통해 글로벌 난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엘리슨은 최근 자신의 기부 방식을 대폭 수정하며 '엘리슨 기술 연구소'라는 이름의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영국 옥스퍼드대 인근에 대규모 캠퍼스를 조성 중이며, 기후 변화 대응, 전염병 치료제 개발, 식량 안보 강화 등 인류 공동의 과제를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 같은 의지를 담아 소셜미디어 엑스에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에 돌려주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지향하는 방식은 기존 자선 기반 기부와는 다소 다르다. 대부분의 자선가들이 대형 재단을 통해 비영리 방식으로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반면, 엘리슨은 영리 기업을 통한 접근 방식을 택했다. 실제로 엘리슨 기술 연구소는 여러 개의 영리 법인으로 구성된 복합적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이들은 이미 수억 파운드를 투입해 연구소 건물과 연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소는 최대 5천 명의 직원을 고용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실리콘밸리의 기부 문화 전환 흐름과도 맞물린다. 메타플랫폼의 마크 저커버그, 고(故)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월 잡스 등 기술 분야의 억만장자들도 유한책임회사(LLC) 형태를 활용해 자선 활동을 수익 모델과 결합시키고 있다. 이는 비영리 방식보다 유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점차 주목받고 있는 방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경향이 자선과 영리의 경계를 흐리며 새로운 기부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래리 엘리슨은 2010년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이 주도한 '기빙 플레지' 서약서에 서명하며 재산의 95%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행보는 그 약속의 방식 자체를 수정하는 것이며, 영리 활동은 '기빙 플레지'에서 기부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산을 공공 이익에 활용하겠다는 의지는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향후 글로벌 부호들의 자산 활용 방식에 더 큰 유연성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인 자선 재단 중심의 기부와 달리, 사회 문제에 대한 시장 기반 접근이 증가하면서 기부와 투자의 경계가 한층 모호해지고 있다. 이는 비영리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면서도 사회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새로운 기부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