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금융업계 바이어들을 설득하는 것은 기업 간 핀테크 스타트업에게 있어 가장 까다로운 과제 중 하나다. 소비자 대상 제품처럼 편의성과 속도만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진짜 승부처는 규제 대응력, 산업 내 신뢰 네트워크, 그리고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첫걸음은 관계 형성이다. 코로나19 이후 직접 만남이 줄어들고 줌(Zoom) 기반 커뮤니케이션이 보편화되면서, 따뜻한 인간관계 형성이 사실상 정지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따뜻한 소개(warm introduction)’의 힘이 여전히 건재하다. 단순한 알고리즘이나 마케팅 자동화보다 전직 은행가 출신의 사업개발 담당자, 금융당국과의 비공식 네트워크, 파일럿 테스트를 이끌어낼 실질적 권한자가 연결돼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초기 단계의 핀테크 기업이라면 적극적인 영업보다 한 명의 전략적 조언자가 더 큰 문을 열 수 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다. B2B 핀테크에서 규제 대응은 법무 이슈가 아닌 신뢰의 화폐 역할을 한다. SOC 2, ISO 27001, GDPR 등 주요 보안 및 개인정보 인증을 선제적으로 준비한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접근 불가능한 계약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신뢰를 확보해 유리하게 협상을 이끈다. 이는 단순히 규제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기업 구매팀의 일종의 ‘검증 통과’ 사인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축은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신뢰할 수 있는 금융기관, 결제 네트워크, 또는 기존 인프라 기업이 스타트업과 함께 이름을 올리는 순간, 시장은 그 기업을 검증된 존재로 받아들인다. 이런 연합은 단순 유통 채널 확대를 넘어, 세일즈 주기를 단축시키고 구매 심사 과정에서 기각 위험을 줄이는 실질적 효과를 주는 가치다. 특히 규제가 강한 금융 시장에서는 스타트업이 소비자의 신뢰를 사기까지 오랜 리드타임이 필요한데, 이때 파트너의 신뢰가 스타트업의 생존 확률을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진정한 시장 침투력을 가지려면,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뢰 네트워크, 규제 대응력, 전략적 제휴라는 삼각축을 기반으로 사업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것이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코드를 잘 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당신을 정말 믿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