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디지털 금융 허브로의 야심을 본격화했다. 8월 1일 발효된 ‘스테이블코인 조례(Stablecoins Ordinance)’는 법정화폐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FRS)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홍콩 금융관리국(HKMA)은 2022년부터 업계 공청회를 거쳐 제도를 설계했고, 2025년 5월 입법회 통과와 7월 AML(자금세탁방지) 지침 확정을 거쳐 제도를 완성했다. 이는 “혁신과 감독의 균형”을 내세운 홍콩의 디지털 자산 전략을 상징한다.
규제의 범위: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 집중
조례의 적용 대상은 홍콩 달러(HKD)뿐 아니라 달러, 유로 등 모든 주요 법정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다. 해외 기업이 HKD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도 규제를 적용받는다. 반면, 중국의 e-CNY 같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이미 은행·증권 규제 아래 있는 디지털 자산은 이번 규제에서 제외된다. 즉, 시장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법정통화 연동형 토큰을 집중적으로 규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라이선스 체계: 무허가 발행 전면 차단
홍콩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거나 홍콩 내에서 마케팅·유통하려는 모든 사업자는 라이선스를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 특히 HKD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해외 사업자도 예외가 없다. 라이선스를 받은 발행사만 소매 투자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무허가 사업자는 전문투자자만 상대할 수 있다. 기존 사업자는 오는 10월 1일까지 신청을 마쳐야 하고, 임시 라이선스는 2026년 1월 31일까지 효력을 유지한다.
발행 요건: 자본력·투명성 강화
발행 요건은 사실상 대형 기관만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높게 설정됐다. 최소 납입자본 2,500만 홍콩달러, 유동자본 300만 홍콩달러, 12개월치 운영비를 감당할 수 있는 초과 자본을 갖춰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은 100% 고품질 유동자산으로 담보돼야 하며, 기업 자산과 분리·보호돼야 한다. 또한 과잉담보를 권장하고, 독립적 위험관리위원회와 투명한 회계 보고 체계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AML/KYC: 사용자 전면 확인 의무화
HKMA는 이번 조례와 함께 ‘발행사 감독지침’과 ‘AML/CFT 지침’을 통해 모든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 대한 KYC(신원확인)를 의무화했다. 모든 거래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기준에 맞춰 모니터링돼야 하며, 의심 거래 보고도 필수다. 발행사는 정기적으로 준비금 구성과 외부 감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개인정보 침해와 탈중앙성 훼손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위반 시 처벌: 강력한 제재
조례 위반 시 처벌은 최대 500만 홍콩달러 벌금과 7년 이하의 징역형, 그리고 매일 10만 홍콩달러의 과징금까지 부과될 수 있다. 이는 규제 당국의 강력한 집행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장 반응: 대형 금융권은 기회, 중소는 벽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8월 8일 스탠다드차터드·애니모카브랜즈·HKT가 합작해 ‘앵커포인트 파이낸셜’을 설립하고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신청을 발표했다. 이는 제도권 금융의 강한 진입 의지를 드러낸다. 반면, 업계 일부에서는 “자본력이 없는 소규모 발행사는 높은 장벽 앞에서 사실상 시장 퇴출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망: B2B 중심 활용 확대
전문가들은 첫 라이선스 발급이 2026년 초에 소수 기업에만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초기에는 기업 간 거래, 국제 송금, 기업 자금 관리 등 B2B 분야를 중심으로 사용 사례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규제화된 은행 지원형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금융과 연결되면서 홍콩은 싱가포르·UAE·EU와 함께 아시아의 핀테크 허브 경쟁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엄격함 속 기회”
홍콩의 이번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자본력 있는 기관에는 새로운 기회, 중소 발행사에는 높은 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규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홍콩은 아시아 최고 핀테크 허브로 재도약할 수 있지만, 균형을 맞추지 못할 경우 지나친 규제가 시장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