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산업의 지형이 또 한 번 변하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 배송 모델이 주류가 된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시대가 20년 넘게 유지돼왔지만, 이제 그 중심축이 AI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기존 SaaS 기업이 안정적인 반복 개선으로 성장해온 반면, AI 기술은 이 방식을 압도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의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앞으로는 AI를 기반으로 한 혁신이 핵심 전략이 되며, 적응하지 못한 SaaS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가장 극명한 변화는 투자 자본의 흐름에서 확인된다. 과거 수십억 달러에 달하던 SaaS 중심의 투자금이 이제는 AI 스타트업과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로 인해 전통적 SaaS 기업들도 AI 중심의 인프라로 전환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민첩하고 기술에 밝은 기업들만이 AI 기반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과거 디지털 경쟁에서 사라져간 노벨이나 DEC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험이 크다.
하지만 기존 강자들도 좌시하고 있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MSFT), 세일즈포스(CRM), 오라클(ORCL)과 같은 글로벌 SaaS 강자들은 이미 방대한 데이터를 자산 삼아 AI 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은 결정 구조가 느리고 혁신 속도가 떨어지는 단점을 안고 있지만, 거대한 고객 기반과 신뢰성이 있어 여전히 큰 거래를 쉽게 성사시킬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반면 후발 주자인 스타트업들은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도 기업 고객을 유치하기까지 장시간의 판매 주기를 견뎌야만 한다.
AI 기반 SaaS 시장은 크게 두 갈래로 발전하고 있다. 하나는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산업별(vertical)로 특화된 신규 AI SaaS 시장이 형성되는 흐름이다. 특히 헬스케어, 법률, 금융, 공급망 등 데이터가 많지만 디지털화가 미진했던 분야에서 폭발적인 잠재력이 기대된다. 헬스케어 SaaS 시장만 해도 2030년까지 약 7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수직 산업별 AI SaaS는 긴 시간 동안 혁신에서 소외됐던 분야에 새로운 가치 창출을 가져오는 중이다.
궁극적으로 SaaS는 ‘AI 네이티브’ 구조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시스템 오브 레코드(기업 데이터의 중심 저장소)를 장악한 대형 기업들은 AI에 강력한 확장성을 부여하고, 유망한 스타트업은 이들에게 인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간 규모 SaaS 기업들의 운명은 불확실하다. 충분한 차별성이 없다면 AI 스타트업에 의해 대체되거나 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먹히거나, 먹거나(Eat or be eaten)’의 시대다. 살아남기 위한 조건은 명확하다. 제품 우위를 넘어, 기업 고객의 핵심 문제를 AI로 풀어내는 능력과 자산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플랫폼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SaaS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현재 우리가 아는 그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