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생태계에서 창업자로 시작해 벤처투자자로 변신한 이들이 스타트업 성장의 양면을 경험한 끝에 전하는 조언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실제 성공과 좌절을 교차하며 체득한 전략들은 AI와 양자 컴퓨팅 등 차세대 기술의 상업화에서 특히 중요성을 더한다. 2018년, 생성형 AI 기반 CAD 스타트업 프러스텀(Frustum)을 매각한 경험을 가진 두 창업자는 최근 샌드박스AQ(SandboxAQ)의 6억 5,000만 달러(약 936억 원) 규모 시리즈 E 라운드를 주도하며 딥테크 투자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샌드박스AQ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GOOGL)에서 분사한 기업으로, AI와 양자 기술을 융합해 사이버 보안과 신약 개발, 정밀 위치 측정 분야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전하는 첫 번째 조언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다. 기술적 난이도에만 집중한 솔루션은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 샌드박스AQ의 경우, 스핀아웃 직후부터 실제 제품과 고객 기반을 확보하면서 기술의 실용성과 시장성을 입증했다. 단순한 연구개발(R&D)에 그치지 않고 기업 고객에게 즉각적인 가치를 제공한 점이 빠른 투자 유치와 시장 반응의 원동력이 됐다.
두 번째로 강조된 점은 투자의 질이다. 딥테크 분야에서 진정한 역량을 가진 투자자는 재무적 지원을 넘어 기술적 조언과 시장 확장의 동반자 역할을 수행한다. 단어만 화려한 '겉핥기 투자자'는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창업자는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운영 경험을 가진 후견 투자자를 선택해야 하며, 신뢰사슬을 형성할 수 있는 투자자 풀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핵심 투자자를 통한 투자자 연합 형성 전략이다. 초기 단계에서 리드 투자자가 확신을 가지고 참여하면, 다른 유수 투자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도미노 효과'를 낳는다. 샌드박스AQ의 예에서처럼, 주요 투자자가 신뢰를 형성하면 구글이나 엔비디아(NVDA)와 같은 전략적 투자자도 자연스레 참여하며 기업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기술력만으로는 증명되지 않는 시장 신뢰도를, 검증된 투자자의 참여를 통해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은 창업자에겐 매우 강력한 도구다.
또한 딥테크 창업자는 시장 교육자 역할도 요구된다. 감성적 마케팅으로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AI와 양자 기술처럼 복잡한 기술들은 그 개념부터 설명이 필요하다. 대중은 AI를 ‘챗GPT’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을 지 모르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 즉시 쓰이는 대규모 수학 모델 기반 AI 솔루션은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샌드박스AQ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 서사를 단순화하고, 응용 사례들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해왔다.
마지막 교훈은 비전과 실행의 균형이다. 딥테크에선 거대한 청사진이 기업가를 이끄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초창기엔 명확한 이정표나 실적 없이 기대감만으로 기업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이때 기술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장기 전략과 수익 가능한 단기 성과 사이에서 현실적인 마일스톤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샌드박스AQ는 산업별 활용 사례에 집중하면서 핵심 기술을 구현 가능한 수준으로 축소해 제품화함으로써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만들어냈다.
프러스텀 인수 후 경영자로, 그리고 현재는 파크웨이 벤처캐피탈(Parkway VC) 공동 대표로 활동 중인 제시 쿠어스-블랭큰십은 생성형 설계 AI와 시뮬레이션, SaaS 분야의 다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컬럼비아와 코넬 대학에서 연구 및 교육 경험을 쌓았다. 함께 파트너십을 이끌고 있는 그렉 힐 역시 15개 주에서 대형 부동산 개발을 이끈 후 벤처 투자자로 전향해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운용해오고 있다. 이들처럼 기술과 자본, 창업 경험을 두루 아우르는 ‘운영형 투자자’는 단순 자금 집행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딥테크 스타트업 창업자는 기술이 아니라 기업을 성장시키는 전투에 뛰어들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적절한 문제 정의, 전략적 투자자 선택, 기술의 시장화, 명확한 서사 전달, 실행력 있는 운영 이 다섯 축이 조화를 이룰 때, 혁신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