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EO 자리까지 넘볼 수 있을까… “리더십은 인간 고유 영역”

| 김민준 기자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는 스타트업 업계를 비롯한 기술 산업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회자되는 주제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다른 곳에 있다. 스스로를 기업의 CEO로 둔 치열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가 ‘AI CEO’를 상상하며 경영 결정을 인공지능에 모두 맡기겠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오라이온(Oraion)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알렉산더 월시는 여기에 단호한 입장을 내놓는다. 그는 “AI는 절대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리더십은 데이터 분석 이상의 것을 요하기 때문이다. 비전 설정, 관계 형성,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는 의사결정 과정 등은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실제로 최고경영자 44%가 이미 내려놓은 결정을 AI의 조언을 듣고 뒤바꾼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지만, 이는 AI가 보좌 역할은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줄 뿐, 전권을 줄 문제는 아니란 설명이다.

월시는 이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AI를 강화 도구로 정의한다. 마크 안드레센이 ‘기술 낙관주의자 선언문(Techno-Optimist Manifesto)’에서 “지능형 기계는 지능형 인간을 증강시킨다”고 한 말처럼, AI는 리더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수단이지, 판단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기술 발전이 노동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새롭지 않다. 산업 혁명, 개인용 컴퓨터, 계산기 등장 때마다 반복됐던 재편 우려는 대부분의 경우 실제 일자리를 없애기보다는 업무의 방식과 본질을 변화시켰다. AI도 마찬가지다. 특히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직관이 아닌 데이터에 근거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함으로써 임원진의 역할을 더 막중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LLM 기반 AI의 환각(hallucination) 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더욱 정확한 정보에 기반해 짧은 시간 안에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월시는 이 같은 기능을 일컬어 ‘agentic AI’라고 부르며, 이 기술이 우리 삶 전반에 민주화된 데이터 접근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기존의 결정 구조는 종종 직감이나 불완전한 정보에 의존하게 되며, 이는 성과의 한계를 초래한다. 하지만 AI로 의사결정을 강화하면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MIT와 맥킨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KPI 개선에 활용하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재무 성과에서 3배 더 높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람들이 AI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각자의 역량을 강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물론, 모든 직무가 AI 시대에 안전한 것은 아니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일수록 대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창의력, 협업 능력, 리더십, 관계 중심의 작업을 필요로 하는 역할이라면 오히려 AI 시대에 더 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월시는 “AI가 잘 설계되면, 이는 개인의 시간을 절약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할 여유를 준다”고 강조한다.

결국 그는 자신을 절대로 AI로 대체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최고의 팀을 꾸리고, 그 팀이 AI를 활용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완전한 판단 권한이 아닌, 모든 정보를 활용해 구성원을 이끌고 시장을 돌파하는 능력에 있다. 앞으로의 리더십은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AI로 증강된 인간 중심의 가치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