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만 보지 마라”… 크란츠가 주목한 중국 AI·디지털 자산 혁신

| 김민준 기자

글로벌 투자자 제레미 크란츠는 “중요한 일은 반드시 실리콘밸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라는 신념을 중심으로 세운 벤처캐피털 센티넬 글로벌(Sentinel Global)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GIC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며 도어대시, 어펌 등 유망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했던 그는, 신흥 시장의 혁신 발전 흐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크란츠는 특히 팬데믹 이후 중국발 인공지능(AI) 기술 상용화 속도에 주목했다. 그는 “중국은 단순한 빠른 추종자를 넘어 AI의 핵심 주도권을 확보했다”고 말하며, 바이트댄스와 DJI 같은 기업들이 짧은 기간 내에 연구에서 상용화로 이어지는 신속한 사이클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실험 중심의 실리콘밸리와 달리, 중국은 연구자에게 수익모델 개발까지 책임지게 하며 결과 중심의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는 2022년 센티넬 글로벌을 설립한 이후, 기업 테크 기반의 중후기 단계 스타트업에 집중하는 펀드 운용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첫 번째 펀드인 ‘센티넬 펀드 I’는 총 2억 1,350만 달러(약 3070억 원)의 자금을 모으며 화제를 모았다. 크란츠는 “현재 LP(출자자) 대다수는 글로벌 국부펀드 및 패밀리오피스로 구성돼 있다. 이들과 공동 투자하며 글로벌 진출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센티넬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AI 기술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지속하려면 ‘자만’이 가장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가 오픈AI의 동향 하나하나를 과잉 보도하며 마치 실리콘밸리 외 지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인식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못지않은, 또는 더 뛰어난 수준의 AI를 제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AI 인프라와 관련해서도 그는 IPO(기업 공개) 중심의 전통적인 자금조달 흐름이 급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미국의 정치 환경과 규제 변화는 ‘자산의 토큰화’를 기반으로 자본시장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IPOs는 단지 하나의 유동화 수단으로 의미가 축소될 수 있다. 사모 시장에서 토큰화된 지분을 이미 거래하고 있다면 IPO는 큰 뉴스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동안 미국 자본시장의 규제 완화 흐름이 본격화되며, 디지털 자산 생태계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스마트계약 기반의 KYC 통합 등 실질적인 거래 효율성 개선이 가능해졌으며, 채권 수익률 기반의 지불 시스템 구축과 같은 파괴적 변화가 실험 단계에 들어섰다고 강조했다. 기존 은행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면서, 해당 수익 권리를 실시간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은 금융 생태계에 거대한 충격이 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놨다.

제레미 크란츠의 발언은 단순한 언급을 넘어 글로벌 자본 흐름의 새로운 판을 읽어내는 통찰로 평가된다. 그는 미국의 기술 혁신에 분명한 자부심을 보였지만, 동시에 "실리콘밸리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이 시대의 테크 리더들에게 던졌다. AI와 디지털 금융의 접점에서, 그의 시야는 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