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도 AI 전환 중…‘직관’ 대신 ‘데이터’가 투자룰 바꾼다

| 김민준 기자

인공지능(AI)이 투자 산업 전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사모펀드(PE) 업계를 중심으로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며, 투자 전략 수립과 가치 창출 방식 자체가 다시 쓰이고 있다. 최근 벤처캐피털 및 PE 전문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PE 운용사 중 60% 이상이 AI를 활용한 의사결정 자동화 및 데이터 최적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맥락에서 FT아이컨설팅 또한 PE사의 59%가 AI를 핵심 성장 요소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그 배경에는 생성형 AI의 본질적 강점이 있다.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 속에서 신속하게 인사이트를 끌어내고, 복잡한 투자 지표 사이의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AI가 기존 투자 전문가들의 직관적 판단을 뛰어넘는 분석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채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투자업계 내부의 문화 자체를 ‘직관 중심’에서 ‘근거 중심’으로 전환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경영자의 경험, 네트워크, 감각이 핵심 자산이었지만, 빠르게 바뀌는 시장과 고평가 자산 환경은 이제 더 높은 수준의 정밀 데이터 분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실제 실무 단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예컨대 엑시트 전략을 준비 중인 창업 기업들은 이제 단순한 매출 성장세만으로는 투자자 설득이 어려워졌다. 현재는 대차대조표 위주의 분석보다 카테고리별 마진, 부문별 성장률, 재구매율 등 다각적인 데이터 기반 근거가 요구된다. 투자자는 수치 그 이상, 즉 ‘왜’ 특정 지표가 유지되거나 변화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을 원한다는 것이다.

AI는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결정적인 도구다. 생성형 AI는 포트폴리오 기업의 실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경영 전략의 유효성을 점검하고, 변동성이 있는 영업지표의 조기 경고 시스템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투자사는 리스크 대비 능력과 수익 가능성 극대화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AI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혁신을 견인하기도 한다. 사모펀드가 투자 기업과 함께 수립한 성장 계획이 AI를 통해 지속적으로 데이터 관점에서 검증되고, 필요시 복원력 있게 조정되면서 경영 실행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투자가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기술로 보완되고 예측되는 실시간 협업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기술 대기업을 넘어 중소형 운용사 및 스타트업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 기계학습 기반 분석 솔루션은 막대한 개발 자본과 전문 인력이 필요한 영역이었지만, 최근엔 API 형태의 저비용 SaaS 솔루션이 등장하면서 투자 정보의 민주화가 진행 중이다. 이는 AI 대응력의 유무가 향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를 가를 주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향후 수년 내 투자 산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동화된 분석 체계와 창의적인 가치 창출 방식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크리스티안 데이비스(JMAN 그룹 파트너)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데이터 환경 내에서 가치를 재정의할 준비가 된 운용사들이야말로 장기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AI는 이제 단순한 옵션이 아닌, 미래 투자 전략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흐름 속에서 인간 중심의 판단과 기계 중심의 분석이 ‘조화’되는 지점이 바로 새로운 투자 기준점으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