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노화 방지'와 '수명 연장'을 겨냥한 생명과학 기술에 주목하고, 장수 관련 산업에 수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 분야가 오랜 시간 학계의 주변부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의 대규모 자금 유입은 산업 지형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9월 7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25년 동안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장수 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총 50억 달러(약 6조 9천억 원)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노화세포 재생·세포 손상 복구·개인 맞춤형 건강제 작용 등에 집중한 바이오 스타트업을 주요 투자처로 삼고 있다. 수명 연장이라는 인류의 오랜 과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된 셈이다.
가장 적극적인 인물 중 하나는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이다. 그는 개인 자금은 물론 벤처 펀드를 통해 12개 이상의 관련 기업에 7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왔다. 노화 지연 기술을 개발하는 ‘뉴리밋’이라는 기업도 틸이 직접 공동창업에 참여한 스타트업 중 하나다. 이 회사는 이미 구글 CEO를 지낸 에릭 슈밋과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창업자 비노드 코슬라 등 9명이 넘는 억만장자로부터 2억 달러 이상을 투자받았다.
오픈AI CEO인 샘 올트먼도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라는 신약 개발 스타트업에 1억8천만 달러를 투입했다. 이 회사는 노화된 세포를 되살리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데, AI 기술과 바이오 연구를 접목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 출신 투자자 유리 밀너, 세계적 벤처캐피털인 앤드리슨 호로비츠의 공동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 등도 장수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단순한 자산 증식 수단이 아니라, 개인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경우도 많다고 본다. 예컨대, 비옴 라이프 사이언스의 창업자 나빈 자인은 아버지를 췌장암으로 잃은 뒤, 맞춤형 건강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를 세우고 스스로 3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는 “노화는 선택 사항이 돼야 한다”는 비전을 내세운다. 모더나 CEO인 스테판 방셀도 ‘단식 모방 다이어트’라는 식이요법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스타트업 L-뉴트라에 약 4천700만 달러를 투입하며, 실생활에서 장수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이처럼 억만장자들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수명 연장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으며, 과거 학계에서 타당성을 의심받던 연구들도 이제는 대중문화와 주류 산업의 핵심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노화 방지 기술이 의료, 식품, 웨어러블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면서 신성장 산업으로 본격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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