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암호화폐 개척자들] 박용수의 비트코인 채굴 증언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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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포스트는 김형중 교수와 함께 대형 기획 연재「한국 암호화폐 개척자들(Korean Crypto Frontiers: The Untold Stories)」을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 암호화폐 산업의 뿌리를 복원하고, 기록되지 않았던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되며, 본 기사에는 스토리의 일부만 실립니다. 전체 내용은 frontier.tokenpost.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으니 사실과 다르게 아무나 자기가 2009년에 비트코인을 채굴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박용수가 그랬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채굴했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 근거 역시 없다. 비트코인 지갑 주소와 비밀키는 모른다, 채굴했다는 바이오 노트북은 포맷했다 하니 그가 비트코인을 채굴햇다는 증거가 전혀 없었다. 그의 증언만 있을 뿐이다.

그는 2009년 하반기에 채굴을 위해 윈도우 운영체제를 지우고 신형 노트북에 리눅스(Linux)를 깔았다고 했다. 당시의 채굴 프로그램은 리눅스 버전과 윈도우 버전이 있었다. 전자는 오픈소스 환경과 채굴 소프트웨어의 호환성, 그리고 서버 운영의 편의성 때문에 개발자들과 초기 채굴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사소한 거지만 리눅스를 설치했다는 그의 증언은 당시 상황과 어느 정도 부합했다. 그러나 리눅스가 나온 게 1991년이니 이것만으로 그의 증언이 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였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박용수는 블록체인에 정보를 저장하려고 시도했다. 그가 비트코인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였으니 그는 먼저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을 뒤지고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그는 비트코인이 전자화폐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참고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 제목이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었다. 그는 그게 신종 데이터베이스 정도로 안 거다. 신체 데이터는 민감한 개인정보이므로 보안이 필요했는데 암호 기술을 바탕으로 설게된 비트코인이 그런 용도에 잘 어울린다고 여겼다.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박창규와 박용수가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한국 최초의 채굴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오늘날의 암호화폐 산업과 연결되는지는 Frontier 전체 기사에서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