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복귀와 함께 새로운 '아이맥'으로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던 시기, 한국의 LG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지만 뜻밖의 변수로 인해 주도권을 놓치게 됐다. 그 중심에는 대만의 폭스콘과 중국이라는 새로운 제조 강국이 있었다.
1997년 국가적 외환위기(IMF 금융위기)에 직면했던 LG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애플의 신제품 생산 파트너로 낙점받는 데 성공했다. 경북 구미에서 팀 쿡 등 애플 주요 경영진이 직접 생산 현장을 확인하며 협력을 독려했고, 이는 당시 애플이 다시금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실제로 1998년 출시된 아이맥은 큰 인기를 끌며 애플이 침체기를 벗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다.
LG는 이 기회를 바탕으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장을 추진했다. 멕시코와 영국 웨일스 등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신설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현지에서 조립 중 화재, 부품 도난, 노동문화의 차이 등 각종 운영상 문제가 잇따르며 효율적 생산체계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LG는 애플과의 돈독한 관계에 기대를 걸었지만, 예상치 못한 경쟁자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바로 대만의 폭스콘이었다.
폭스콘은 LG보다 낮은 단가를 제시하면서도 제조 장비 투자까지 자임하며 애플과의 협력을 제안했다. 팀 쿡 당시 애플 부사장이 직접 폭스콘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판도는 급변했다. 폭스콘의 궈타이밍 최고경영자(CEO)는 이익보다 기술 습득에 초점을 맞춘다는 장기 전략 아래, 애플과의 협력을 교두보 삼아 애플의 엔지니어들과 직접 협업하며 기술력을 빠르게 축적해나갔다.
이러한 흐름은 결과적으로 애플의 생산거점이 대만과 중국으로 집중되게 한 원인이 됐다. 특히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이 대규모로 존재하는 중국은 순식간에 애플 공급망의 중심국으로 부상했다. 1999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애플 제품이 거의 생산되지 않았지만, 10년이 지나자 대부분의 제품이 중국에서 조립됐다. 애플은 전 세계 1천500개 이상의 협력업체 중 대부분을 중국과 연결된 공급망으로 구성해나갔다.
애플의 이런 ‘오프쇼어링’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인 비용 절감과 생산 확대를 가능하게 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다국적 기업들의 기술과 노하우는 중국의 인프라 및 인재와 결합해 화웨이, 샤오미, BYD 등 자국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 내부에서도 반성과 재평가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있다. 자본 논리에 따른 해외 이전 결정들이 결국에는 국가적 기술 주권과 제조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각은 미·중 전략 경쟁을 바라보는 최근 미국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향후 정치 환경과 글로벌 공급망 전략의 변화에 따라, 애플과 같은 기업의 의사결정 방향도 다시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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