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VC 판도 흔든 신흥 6인방… AI·반도체에 수억 달러 ‘통큰 투자’

| 김민준 기자

최근 수년간 AI, 반도체, 우주 기술 등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가운데, 이른바 'VC 신흥 세력'이 대규모 투자 전면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대형 벤처투자 라운드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사들이 선도하지만, 최근 수십억 원 이상을 투자한 대표 라운드에서 눈에 띄는 새 얼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1~2년 내 창업했으며, 단기간에 유니콘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2024년 설립된 매버릭 실리콘이다. 반도체 성장 기업에 집중하는 이 신생 투자사는 설립 불과 1년여 만에 업계에서 가장 활발한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업스케일 AI에 대한 1000만 달러(약 144억 원) 규모 공동 리드를 비롯해, 올 8월에는 아날로그 설계 자동화를 추진하는 실리콘밸리의 셀레라 세미컨덕터에 2000만 달러(약 288억 원)를 지원했다. 매버릭 실리콘은 뉴욕과 북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모회사 매버릭 캐피털이 운용하는 자산은 약 10조 원 규모에 달한다.

우주 기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VC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스페이스X 출신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지난해 설립된 인터라고스 캐피털은, 우주 유니콘 스타트업 에이펙스의 2억 달러 이상 시리즈D를 이끌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공동 창업자인 아찰 우파디야야와 톰 오치네로는 스페이스X에서 각각 기술 담당, 상업 부문 고위 임원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로보틱스와 우주 태양광 기업에 잇따라 2000만~5000만 달러 규모 투자에 참여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쿠퍼티노에 본사를 둔 마라톤 매니지먼트 파트너스 역시 올해 투자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코튜 출신 마이클 길로이와 유명 엔젤 투자인 고쿨 라자람이 공동 창업한 이 회사는, 설립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4건의 시리즈 투자에서 리드를 맡으며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AI 기반 급여·복지 플랫폼, AI 화물 예약 솔루션 등에 1500만~31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다. 이들은 4월 증권거래위원회(SEC)에 4억 달러 규모 최초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신고한 바 있다.

또 다른 주목할 기업은 폭스바겐에서 자금을 유치했다고 알려진 독일 VC 리트모티프다. 올초 1억 달러(약 1440억 원) 시리즈B를 전기 트럭 스타트업 하빈저에 투자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들은 특히 탈탄소와 하드테크에 집중한 ‘정책 친화형’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유럽 내 존재감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캐나다의 인트레피드 그로스 파트너스는 토론토를 거점으로 AI 성장을 위한 대규모 자본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와 OMERS 그룹의 전 수장이 공동 창립했고, AI 광고 플랫폼 스택어댑(2억3500만 달러), AI 기반 세무 연구 스타트업 블루J(1억2200만 달러) 등 굵직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2025년 8월 공식 출범한 바나라 캐피털은 일찍부터 강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TPG의 전략 펀드 ‘TPG 넥스트’가 초기 투자자로 나서며 기대를 모은 이 회사는, 출범 직후 1억 달러의 AI 엔터프라이즈 기술 기업 인비저블 테크놀로지 투자로 첫 대형 딜을 마무리했다. 공동 창업자는 모두 TPG 출신이다.

그간 주요 벤처 라운드는 시콰이어, 안드리슨 호로위츠 등 고전적 대형 자본이 주도해왔으나, 최근 형성되는 이들 '신흥 투자 6인방'의 부상은 VC 시장의 세대 교체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특히 AI, 반도체, 우주, 친환경 등 전략 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과 대형 리스크를 감수하는 공격적 투자 전략이 눈에 띈다. 당장은 잠재력이지만, 향후 이들 중 상당 수가 시장을 움직이는 주도 세력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