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가 더 이상 출구 아냐…스타트업, 유동성 위기에 전략 수정 중

| 김민준 기자

2024년 IPO 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약 절반가량의 상장이 연기되며 스타트업 생태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시장 변동성과 지정학적 불안, 완화되지 않은 금리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전통적인 IPO 전략이 더 이상 확실한 엑시트 수단으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상장보다는 잠정적 대안을 모색하며 생존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상장 연기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그 파장은 투자자, 창업자 그리고 직원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벤처 자금을 유치해 고속 성장해온 후기 단계 스타트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벤처펀드 측 역시 엑시트 시점이 미뤄지면서 신규 펀딩 유치에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직원 보상체계 핵심인 스톡옵션의 가치가 장기 정체되며 인재이탈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 밸류에이션의 불확실성도 주요 위협 요인이다. 거시경제 불안정성과 보수적 투자심리는 상장 시 적정 기업가치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IPO 텀시트에서 기대한 밸류를 받지 못할 경우 '다운 라운드(전보다 낮은 가치로 자금 조달)' 리스크가 커진다. 이는 기존 투자자 신뢰 저하로 이어지고, 유동성 확보 시점이 늦춰지며 전체 펀드 수익에도 장기적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유동성 부족이 초래하는 재무적 리스크도 간과할 수 없다. IPO를 통해 운전자금을 조달하려던 기업들은 대안으로 부채 조달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단기 유동성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지만, 고금리 환경에서는 막대한 이자 부담과 함께 유연한 자금 운용에 제약을 주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외부 자금에 지속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시장 환경이 악화될 경우 일시에 존폐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일부 스타트업들은 합병·인수(M&A)를 통한 엑시트로 방향을 틀며 시장 적응에 나서고 있다. 대형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고 경영 불확실성을 줄이는 동시에 성장 동력을 이어가려는 시도다. 이외에도 직접 상장, 사모펀드 매각 등의 경로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변화된 IPO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전략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유동성 부족에 대비한 정밀한 현금 흐름 관리와 비용 통제가 필요하며, 시나리오별 자금 조달 계획을 사전 수립해 예측 가능한 재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D&O(임원 배상 책임) 보험이나 E&O(전문직 과실 책임) 보험 같은 리스크 헤징 수단도 스타트업의 지속성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법적 리스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이사진과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신의성실 의무'를 갖기 때문에, IPO 시도와 관련된 모든 결정은 합법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규제 환경 변화에 대한 실시간 대응, 재무 공시의 정확성 확보 등도 필수적이다.

IPO 시장은 더 이상 예전처럼 단순한 엑시트 모델이 아니다.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투자자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전략과 정교한 리스크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스타트업들은 IPO를 '최종 단계'가 아닌 하나의 옵션으로 보고, 다양한 경로의 유동화 전략과 내부 절차의 정비를 통해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