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오테크 유니콘들, '투자 절벽'에 갇혔다…204개 스타트업 멈췄다

| 김민준 기자

미국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생태계가 장기화된 투자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이상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최소 200개 이상의 미국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이 3년 이상 신규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업들 대부분은 과거 수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지만, 최근 몇 년 간 공개된 자금 유입이 전무해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 가운데 최소 15개 기업은 유니콘 혹은 유니콘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고성장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이며, 마지막 자금 조달 시점은 대개 2020~2022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매년 평균 400억 달러(약 57조 6,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바이오테크 분야에 쏟아지며 전례 없는 '붐'이 일었지만, 이후 투자 기조가 급반전하면서 많은 기업이 대규모 자금만 확보한 채 후속 투자를 끌어오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대표적인 사례는 머신러닝 기반 신약 개발 기업 인시트로(Insitro)다. 이 회사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총 6억 4,300만 달러(약 9,237억 원)를 유치했지만 그 이후로 신규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자금난 조짐은 이미 가시화됐다. 인시트로는 지난 봄 전체 직원의 22%를 감원하며 2027년까지 재정 운용을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농업 기술을 개발하는 피벗 바이오(Pivot Bio) 역시 2021년 4억 3,000만 달러(약 6,192억 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한 후 추가 투자 없이 4년째 버티고 있다. 이 기업은 최근 본사를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중서부로 이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는데, 이는 비용 절감과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저비용 유전체 분석 플랫폼을 개발 중인 얼티마 지노믹스(Ultima Genomics)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2년 안드리센 호로위츠와 코슬라 벤처스 등의 투자로 3억 달러(약 4,320억 원)의 초기 자금을 확보했지만 이후 추가 유치 소식은 전무하다. 다만, 얼티마는 최근 들어 파트너십 확대에 주력하고 있어 재기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평가다.

이처럼 3년 이상 신규 투자를 받지 못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204곳이 그간 확보한 누적 자금 규모는 약 179억 달러(약 25조 7,360억 원)에 달한다. 이는 2025년 상반기 미국 전체 바이오테크 분야 벤처 투자액과 맞먹는 수치로, 잠재적 리스크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바이오테크 시장이 경기 사이클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회복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IPO 시장은 여전히 위축돼 있지만, 기업공개 재개와 인수합병(M&A) 확대가 투자 회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한다. 실제로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수면 아래에서 상장을 준비 중인 유망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생존에 성공하진 못할 것이다. 다수 기업이 향후 몇 분기 내 문을 닫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생존에 성공한 일부 바이오테크 기업은 향후 IPO와 M&A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바이오 테크놀로지 산업은 기술 성숙 속도가 느리고 개발 주기가 길어 장기 자금 운영이 절실한 분야다. 따라서 투자자와 창업자 모두가 긴 호흡으로 전략을 조정하는 한편, 정책적 지원도 병행돼야 이 난국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