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거래될 수 있다.”
한때 실험이었던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이 이제 금융의 한 축으로 편입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모회사 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ICE)가 암호화폐 기반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에 최대 20억 달러(약 2조7천억 원)를 투자하며 시장이 요동쳤다. 전통 금융과 웹3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 예측 시장, 도박에서 데이터로
예측 시장은 간단하다. “특정 사건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에 돈을 거는 시장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구조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놀랍다. 수천, 수만 명이 모여 만들어낸 확률은 종종 여론조사나 전문가 전망보다 정확하다. 이를 시장이 ‘정보의 집합’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ICE가 폴리마켓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거래 수수료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집단 확률”, 즉 사람들이 믿는 미래를 데이터로 전환해 금융상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ICE는 폴리마켓이 생성하는 실시간 확률 데이터를 시장 심리지표(Sentiment Index)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는 “예측이 곧 데이터”이자, “집단 신념이 새로운 자산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 칼시와 폴리마켓, 두 갈래 길의 만남
예측 시장의 제도화는 칼시(Kalshi)에서 시작됐다. 2018년 MIT 출신 경제학자 타렉 만수르와 루아나 로페스 라라는 “불확실성을 거래하자”는 목표로 칼시를 설립했다. 3년의 인허가 끝에 2020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인가를 받아 세계 최초의 공인 예측 거래소가 되었다. 경제 지표, 날씨, 정치, 금리 등 다양한 사건이 거래 대상이 됐다.
반면 폴리마켓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2020년 출범했다.지갑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규제는 없었다. 그러나 2022년 CFTC의 제재를 받으며 미국 내 서비스를 중단했다. 대신 해외로 확장했고, 2024년 미국 대선에서는 단일 이벤트 거래 규모가 33억 달러에 달했다.
2025년 폴리마켓은 CFTC 인가 거래소 QCEX를 1억1200만 달러에 인수하며 합법 복귀를 선언했다. 규제 밖에서 자란 플랫폼이 결국 제도권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두 회사의 전략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법과 코드의 공존’을 통해 예측 시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a16z 파트너 크리스 딕슨(Chris Dixon)은 이를 두고 말했다.
“시장(Market)은 정보 시스템이다. 예측 시장은 집단 지식을 확률로 전환한다.” (〈Investing in Kalshi〉, a16z, 2024년)
■ 월가의 새로운 금융 실험
ICE의 투자는 월가의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뉴욕증권거래소를 소유한 전통 금융기관이 암호화폐 기반 시장을 직접 품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ICE는 이를 통해 ‘이벤트 데이터 금융화’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 한다.
폴리마켓의 데이터는 단순한 베팅 결과가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의 판단이 모여 생성된 ‘집단적 확률’이다.
ICE는 이를 자산시장 데이터처럼 패키징해 기관 고객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칼시 역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세쿼이아, a16z, 코인베이스 등으로부터 3억 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50억 달러를 돌파했다. 두 회사 모두 “예측을 금융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 한국, 문턱에 선 논쟁
예측 시장은 이미 한국에도 상륙했다. 2025년 초,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수천 명의 한국 이용자들이 해외 예측 플랫폼 폴리마켓에 참여했다. 당시 시장은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약 69%로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불법이지만, VPN과 스테이블코인으로 우회 참여가 가능했다.
정부는 “해외 플랫폼이라도 국내 거주자의 베팅은 불법”이라며 경고했다. 그러나 사실상 단속은 불가능했다. 시장과 기술은 이미 국경을 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찬성론자들은 “예측 시장은 여론조사보다 빠르고 정확한 민간 데이터 인프라”라고 본다. 반대론자들은 “정치와 재난까지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공공 윤리를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프랑스와 태국은 이미 폴리마켓 접속을 전면 차단했다.
■ 한국의 선택: 금지냐, 관리냐
한국은 지금 선택해야 한다.
① 금지 — 그러나 암호화폐 기반 구조상 실효성이 낮다.
② 제도화 — 칼시처럼 경제·날씨·정책 등 비정치적 주제만 허용하는 합법 예측 시장 도입.
기술 인프라와 개인투자 열기가 강한 한국은 두 번째 모델이 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예측 시장을 단순히 “도박”이 아닌 “정보경제의 확장”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16z의 편집장 알렉스 단코(Alex Danco)는 그의 에세이 〈Prediction: The Successor to Postmodernism〉에서 이렇게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각자의 진실을 말했다면, 예측의 시대는 확률로 검증된 진실을 말한다.”
예측 시장은 단순한 내기가 아니다. ‘지식의 금융화’, 즉 불확실성을 자본의 언어로 번역하는 새로운 인프라다.
■ 미래는 이미 거래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예측 시장이 새로운 금융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칼시와 폴리마켓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표 — “예측의 제도화” —를 향해 달리고 있다. 월가와 실리콘밸리가 이 시장에 뛰어든 지금, 한국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예측 시장은 이미 전 세계적 흐름이다. 미래를 사고파는 사람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금융기관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거래하는 것’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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