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포스트 칼럼] 블랙록, “핵심은 디지털 자산”… 월가의 거인이 블록체인으로 간다

| 권성민

블랙록의 2025년 3분기 실적발표에서 가장 주목받은 단어는 단연 ‘디지털 자산’이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공식 석상에서 ‘토큰화(Tokenization)’와 ‘디지털 월렛’을 거론한 것은 단순한 기술 트렌드 언급이 아니라, 금융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향한 선언에 가깝다. 전통 금융의 최전선에 서 있던 블랙록이 이제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의 진입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자본시장의 중장기 변곡점이 예고된다.

이번 3분기 실적은 숫자만 보면 안정적이었다. 운용자산(AUM)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순영입 자금도 2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매출은 전년 대비 25% 증가한 65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주당순이익(EPS)도 전년 대비 소폭 상승했다. 다만 인건비와 보상비 증가로 영업비용이 커졌고, 이익률 측면에서는 약간의 둔화세가 감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블랙록이 보여준 방향성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실적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블랙록이 어떤 회사가 될 것인가’였기 때문이다.

로렌스 핑크 블랙록 CEO는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전통 금융시장과 디지털 자산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향후 최대의 상업적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아니라, 금융자산의 존재 방식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블랙록이 말하는 ‘토큰화’란, 주식·채권·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상에 디지털 토큰 형태로 전환해 거래와 관리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산운용사의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을 기술 인프라 중심으로 재구성하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접근은 단기적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제공하기보다, 장기적으로 금융 생태계 전체를 재편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블랙록은 이미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계기로 디지털 자산 시장의 제도권화를 주도해왔다. 이제는 단순한 암호화폐 투자상품이 아니라, ‘토큰화된 자산’이라는 개념으로 전통 금융과 블록체인을 결합하려 한다. 핑크 CEO가 말한 “디지털 지갑 위에서 운용되는 포트폴리오”는 그 비전의 압축적 표현이다. 투자자는 브로커나 중개자 없이도 자신의 자산을 디지털 지갑 하나로 관리하게 될 것이고, 자산운용사는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디지털 자산의 규제 환경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토큰화된 증권의 법적 지위 또한 국가별로 제각각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 방향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블록체인 기술이 내포한 보안 리스크와 개인정보 보호 이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게다가 디지털 인프라 확장에 따른 비용 상승이 이미 재무 구조에 압박을 주고 있다. 블랙록이 디지털 혁신을 내세우며 ‘기술 기업화’의 길을 걷는다면, 자산운용사로서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지켜야 하는 이중과제를 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블랙록의 방향 전환을 ‘진짜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한 마케팅 수사가 아니라, 세계 금융의 핵심 인프라 기업이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 금융의 일부로 끌어들이려는 실질적 행보다. 실제로 블랙록은 토큰화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신규 펀드 출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투자자 대상의 디지털 자산 포트폴리오 상품 역시 준비 단계에 있다.

결국 블랙록이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디지털 자산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인터넷이 증권거래의 방식을 바꿨다면, 이제 블록체인이 자산의 형태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블랙록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구조, 즉 금융의 본질이다.

블랙록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글로벌 자본시장은 ‘디지털 토큰 시대’로 진입할 것이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거대 금융의 기술적 낭만은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블랙록이 던진 화두, “핵심은 디지털 자산이다”라는 말은 이제 금융산업 전체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