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트코인의 침묵 ― 사이퍼펑크의 퇴장, 블랙록의 등장

| 토큰포스트

비트코인이 멈췄다.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기술주는 다시 달리고 있다. 금 가격은 온스당 4,200달러를 넘어섰다. 위험자산 전반에 돈이 몰리지만, 비트코인은 조용하다. 가격은 좁은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투자심리는 식었다. ETF 승인, 기관 유입, 규제 완화 등 모든 호재가 이미 현실이 됐는데, 시장은 꿈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침묵은 실패의 신호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 비트코인은 성장통을 겪고 있다. 초기 세대가 떠나고, 제도권이 들어오는 과정—즉, ‘사이퍼펑크의 퇴장과 블랙록의 등장’이 진행 중이다. 이것은 약세장이 아니라 성숙의 징조다.

조용한 상장, 구조적 전환의 시작

비트코인은 전통적 의미의 기업이 아니다. 창업자도 없고, 배당도 없다. 그러나 시장의 본질은 동일하다. 초기 투자자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성공하면 이익을 실현한다. 전통 시장에서는 이를 ‘기업공개(IPO)’라 부른다. 비트코인도 지금 그와 유사한 과정을 겪고 있다.

ETF 승인으로 유동성이 생기자, 초창기 보유자들의 ‘구비트코인’이 서서히 시장으로 나왔다. 갤럭시디지털이 한 고객을 위해 약 8만 개, 90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도했다고 밝힌 것은 그 상징적 사건이다. 이는 패닉 셀링이 아니다. 승자의 청산이다. 시장은 그 물량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성숙이다.

약세장이 아닌 ‘분배의 시장’

2018년의 폭락은 공포였다. 2020년의 급락은 생존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체는 전혀 다르다. ETF가 자리를 잡고, 제도권 자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네트워크 해시레이트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비트코인은 지금 ‘분배(distribution)’ 국면에 있다.

초기 보유자들이 일부 물량을 매도하고, 기관과 장기 투자자들이 그 물량을 흡수한다. 온체인 데이터는 여름 이후, 수년간 움직이지 않던 코인이 거래된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패배의 매도’가 아니라 ‘수익 실현’이다. 그래서 폭락은 없고, 지루한 횡보만 있다. 가격은 멈췄지만, 구조는 재편되고 있다.

이상에서 제도로…비트코인의 새 주인

비트코인은 반체제적 정신에서 태어났다. 정부의 간섭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외친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러나 자산이 커지고 시장이 커지면, 이상은 제도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블랙록, 피델리티, 노던트러스트 같은 기관투자자들이다. 그들은 ‘자유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포트폴리오의 한 구성요소로 비트코인을 매입한다.

사이퍼펑크의 퇴장은 낭만의 상실처럼 보이지만, 자산의 성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진화다. 소수 고래의 지갑에서 수많은 투자자의 손으로 코인이 흘러가며, 시장은 점점 안정된다. 집중은 불안정하고, 분산은 안정적이다. 비트코인은 지금 그 과정을 거치고 있다.

‘조용한 IPO’의 끝에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은 모두 상장 직후 한동안 주가가 정체됐다. 초기 주주들이 수익을 실현하고, 새로운 주인이 시장을 받아들이는 기간이었다. 비트코인도 같다. 고래의 손에서 ETF와 기관의 손으로 넘어가며, 소유 구조가 바뀌고 있다. 이 시기는 짧지 않다. 전통 시장에서는 6~18개월이 걸리지만, 비트코인은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이미 절반은 지나왔다.

이제 시장은 안정기를 향해 간다. 10배 급등의 시대는 끝났지만, 3배 상승의 시대가 시작된다. 투기의 시대가 지나고, 채택의 시대가 열린다. 그것이 비트코인이 성숙한 자산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다.

새로운 질서로 들어서는 비트코인

사이퍼펑크가 떠나고, 블랙록이 들어섰다. 이것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다. 혁명이 제도에 편입되고, 실험이 체계가 되는 순간이다. 가격의 정체는 오히려 안정의 증거다. 집중된 보유 구조가 분산되면서 시장의 체력은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비트코인은 더 이상 외부의 반항자가 아니다. 이제는 세계 금융 질서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다. 그 상징이 바로 이 ‘조용한 상장’이다. 혁명의 상징이 금융의 인프라로 자리 잡는 전환—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비트코인의 진짜 얼굴이다.

비트코인은 죽지 않았다. 이것은 끝의 시작이 아니라, 시작의 끝이다. 시장은 멈춘 듯 보이지만, 구조는 진화하고 있다. 사이퍼펑크가 떠난 자리에서 블랙록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성숙한 자산으로 다시 태어난 비트코인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