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000 시대, "약한 원화가 만든 착시일 수 있다"

| 한재호 기자

코스피가 4,1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의 프레임이 만들어졌지만, 같은 시기 원·달러 환율은 1,460~1,47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는 2025년 들어 가장 약한 원화 구간으로, 주가는 ‘한국 리레이팅’을 말하지만 통화는 ‘한국 프리미엄이 없다’는 시그널을 내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증시 랠리지만, 그 이면에 있는 ‘환율 기반 실적 착시’를 짚지 않으면 시장 해석은 왜곡될 수 있다.

코스피 4,000의 외형…세계 최고 성과 속 구조적 한계

2025년 들어 코스피는 70% 넘는 상승률로 글로벌 주요 지수를 압도하고 있다. AI, 반도체, 조선, 방산 등 수출 중심 업종이 랠리를 이끌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코스피200은 80%에 육박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있다”며 이 흐름을 구조적 리레이팅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속도를 견인한 핵심 요인이 ‘약한 원화’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증권가는 ‘5,000포인트 시대’를 전망하고 있지만, 정작 환율 1,470원이 만들어낸 실적 기반 위에 놓인 수치라면 이 흐름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환율 1,470원, 증시와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신호

11월 들어 원·달러 환율은 1,470원대를 넘나들며 원화 약세가 고착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연중 평균 환율 1,410원대와 비교하면 약세 폭이 크다. 주가는 오르는데, 통화는 약한 이 ‘비대칭 장세’는 단순한 일시적 노이즈가 아니라 한국 시장 구조에 대한 복합적 시사점이다.

통상 외국인 자금이 주식시장에 유입되면 원화 강세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현재는 외국인 매수에도 원화 수요가 뚜렷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 이는 외국인이 원화를 장기 보유하려 하지 않으며, 실질적인 신뢰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수출 대형주 실적에 반영된 환율 착시

이번 랠리를 이끈 반도체, 조선, 방산 업종은 달러 매출 비중이 높은 산업군이다. 이들은 환율이 높을수록 수출 실적이 원화 기준으로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기업 실적이 ‘환율 수혜’로 예쁘게 포장되며 시장은 이를 근거로 밸류에이션을 재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환율이 1,300원대로만 정상화돼도 기업 이익 추정치는 조정이 불가피하다. 현재 주가는 1,470원 환율 수준에서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어, 이를 구조적 개선의 결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실적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원화가 약해진 것이다.

통화 신뢰와 증시 기대 사이의 괴리

현재의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달러 강세와 함께 한국 자금의 해외 유출이라는 구조적 흐름의 결과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미국과의 대규모 협력 투자 패키지, 산업별 대외 지출 확대는 외환시장에선 ‘달러 유출 압력’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증시 부양 메시지는 분명 투자자 신뢰를 견인했지만, 외환시장에서는 그 반대의 신호가 관측되고 있다. 배당 확대, 세제 개편 등 정책적 유인이 지수에는 긍정적이지만, 재정 지출 확대는 오히려 통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지수는 정책 프리미엄을 받고 있지만, 환율은 정책 비용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정책과 시장 모두 ‘환율 변수’ 정면으로 마주해야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그러나 정부와 시장이 “한국이 다시 평가받고 있다”고 말할 때, 이 주가가 환율 1,470원이라는 약한 통화 위에 쌓였다는 점도 함께 설명돼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지금의 실적이 환율에 얼마나 민감한지, 환율이 정상화되면 어느 정도의 이익이 빠질 수 있는지를 따로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적이 좋아진 기업”이 아니라 “환율 효과로 착시가 난 기업”에 투자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환율 위의 랠리, 그 강도는 검증 필요

코스피 4,000은 중요한 이정표다. 하지만 이를 한국 시장의 체질 개선으로 곧장 연결짓기엔 아직 설명이 부족하다. 지금처럼 헤드라인에 ‘지수만’ 소비되면, 환율이 1,400원 밑으로만 내려와도 실적과 주가의 불일치가 노출될 수 있다. 시장이 놀랄 이유는 없다. 애초에 주식이 나빠서가 아니라, 환율을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