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높아도 돈 못 모은다… 신생 VC의 역설

| 김민준 기자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독립 신생 펀드들이 기존 대형 투자사 대비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 모집에는 점점 더 큰 벽이 생기고 있다. 카르타(Carta)의 자료에 따르면, 같은 시기에 출시된 펀드들 중 규모가 작은 펀드일수록 총분배/투자비율(TVPI)이 더 높게 나타났지만, 기관 투자자들은 여전히 대형 VC에만 자금을 집중하며 보수적인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펀딩 사이클에서 첫 번째 펀드를 운용 중인 신규 펀드매니저들은 겨우 11억 달러(약 1조 5,800억 원)를 모금하는 데 그쳤으며, 이는 불과 수 년 전과 비교해도 절반 이상 줄어든 규모다. 2024년 기준으로는 평균 LP 수 역시 47개로, 2년 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은 수익률이 아닌 관계 형성과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초기 단계 펀드는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아이디어나 사업 모델보다는 해당 운용인이 얼마나 신뢰를 주고,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많은 투자자들은 딥테크 기술이나 투자전략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투자 결정을 한다. 결국 자본은 관계를 따라간다는 말이 업계 내에서는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전통적인 금융 커뮤니티와 학연 중심의 투자 문화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버드, 스탠퍼드, 옐대 등 명문대를 졸업하고 골드만삭스나 메타를 거친 경력을 가진 사람들과 외부 배경을 가진 창업자 사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 이런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력을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공감대를 만드는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즉,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요 기관 투자자 외에도 비전통적 자금 소스를 발견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예컨대 축구 구단주나 부동산 개발업자처럼, 리스크에 익숙한 고액 자산가들 가운데는 벤처 펀드의 위험을 오히려 덜하게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스스로의 관심사나 투자 성향에 맞춘 접근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첫 번째 펀드에 있어 ‘앵커 투자자’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의도와 관계 설정 방식이 관건이다. 좋은 앵커는 팀의 투자 철학을 신뢰하고 조언자로 남기를 원하지만, 나쁜 앵커는 자본을 무기로 투자 결정을 좌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궁극적으로 수익은 주도권이 있는 펀드에서 만들어지고, 외부 간섭이 심한 구조에서는 재무적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시장이 아무리 어려워도 신뢰는 여전히 자본의 흐름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첫걸음을 내딛는 벤처캐피털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 그리고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지속적인 신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