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엡스타인 파일 투명법(Epstein Files Transparency Act)’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19일(현지시간) 서명하면서 법무부가 보유한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건 공개 작업이 시작됐다.
최근 하원 감독위원회와 에스테이트(유산) 측에서 공개한 이메일들에는 엡스타인이 MIT 디지털 화폐 이니셔티브(DCI)의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 지원에 관여한 정황과 일부 암호화폐 인사들과의 접촉 기록도 포함돼 있어, 엡스타인의 금융 네트워크와 비트코인 초기 생태계,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 크립토 정책이 어떤 구조로 연결돼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엡스타인, 금융 엘리트 네트워크의 ‘문제 해결사’에서 성범죄자까지
엡스타인은 1970년대 뉴욕 사립학교 달튼 스쿨에서 물리·수학 교사로 일하다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로 옮겨 금융권에 진입했다. 이후 초고액 자산가들을 상대로 세금 최적화·자산 관리 자문을 제공하며 경력을 쌓았고, 1980년대 후반에는 자신의 투자·자산관리 회사를 설립해 사실상 ‘패밀리 오피스’ 형태로 억만장자 고객을 관리했다.
가장 잘 알려진 고객은 빅토리아 시크릿 모회사 L브랜즈(L Brands)의 창업자 레슬리 웩스너다. 엡스타인은 웩스너의 재정을 전담하며 신뢰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계·정계·학계·과학계까지 이어지는 폭넓은 상류층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우대 지역을 활용한 법인 구조와 고도의 자산 은닉·절세 기법을 동원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그는 미성년자 성착취 및 인신매매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2019년 수감 중 사망한 이후에도 “누가 그와 얽혀 있었는가”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이번 ‘엡스타인 파일’ 공개는 이 네트워크의 실제 범위와 성격을 어느 정도까지 확인할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 ‘과학·암호화폐’에도 손 뻗은 엡스타인…비트코인 논의 정황도 문건에 포함
엡스타인은 단순 금융가를 넘어 과학기술, 장수 연구, 디지털 경제 등에도 관심을 보였다. 2011년 그가 뉴욕 저택에서 주최한 비공식 콘퍼런스 ‘마인드시프트(Mindshift)’는 과학자, 기술 전문가, 금융 인사들이 교류하는 자리로 알려졌다.
최근 의회 문건에 따르면, 이 자리 이후 엡스타인의 자택에서 비트코인의 미래와 정책 리스크에 대한 비공식 논의가 이뤄졌다는 정황이 담겼다. 참석자로는 테더 공동 창업자 브록 피어스,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 등의 이름이 거론됐다. 일부는 이후 암호화폐 산업 및 정책 설계에 직접 관여한 인물들로, 이 회동이 암호화폐 역사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엡스타인은 MIT 디지털화폐이니셔티브(DCI)에 기부를 했고, 비트코인을 ‘가치 저장 수단’으로 평가하며 공식적으로 지지한 발언도 남겼다. 다만, 그는 디지털 화폐의 일상 결제 수단화보다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의 필요성에 더 공감한 것으로 분석되며, 이 또한 정책적 논란을 낳고 있다.
■ 트럼프 대통령, 공개 반대에서 찬성으로 선회
이번 문건 공개는 단순한 사법 절차를 넘어 정치권에 직접적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 문건 공개에 반대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지지로 입장을 바꾼 것은 주목할 변화다. 이는 공화당 내 다수 의원들의 찬성과, 공개 여론 확대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는 엡스타인과 트럼프의 만남 기록, 이메일, 피해자 진술 일부가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민주당의 정치적 음모"라며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문건이 공개될 경우 대선을 앞둔 정국에서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 크립토 시장에도 ‘정치 리스크’…정책 방향에 변수
정치적 파장과는 별개로, 이번 엡스타인 문건 공개는 암호화폐 시장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초기부터 암호화폐 산업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며, 2025년 들어서는 정부 보유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유하는 방침, 디지털 자산 규제 완화, 바이낸스 창업자 창펑 자오 사면 등의 조치를 단행했다.
이 같은 정책은 시장의 기대감을 자극해온 반면, 엡스타인 문건에 트럼프 대통령 본인 혹은 그 측근과의 연관성이 포함될 경우, 투자자 심리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엡스타인과 비트코인 초기 논의 정황이 과장되거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소비될 경우, 디지털 자산 시장의 단기적 변동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권력, 금융, 기술의 교차점…엡스타인 문건이 던지는 질문
제프리 엡스타인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고위층 자산을 관리하고 정·재계 네트워크를 조율한 권력 중개자였다. 그가 관심을 보였던 암호화폐와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의 흔적이 다시 떠오르고, 이를 통해 드러날 정계·경제계 인사들의 실체는 미국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 크립토 산업의 정책 방향, 그리고 엘리트 권력 구조에 대한 대중의 신뢰. 엡스타인 문건 공개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흔들 수 있는 ‘정치·경제 크로스오버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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