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시장의 차세대 핵심 기술로 꼽혀온 ‘자산 토큰화(Tokenization)’가 단순한 구상을 넘어 실질적인 운용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미 기술을 도입한 금융사들은 효율성과 투명성 측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효용성 입증에도 불구하고, 규제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암초 탓에 시장의 ‘거함(巨艦)’들이 항로를 변경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브로드리지(Broadridge)가 발표한 ‘2025 토큰화 서베이(2025 Broadridge Tokenization Survey)’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와 유럽의 300개 주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산 토큰화는 이미 금융 인프라의 핵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탁기관(Custodian)의 91%가 토큰화 도입 후 자산 서비스 및 이체 업무에서 효율성과 투명성이 개선되었다고 응답해 그 효과를 증명했다.
■ “거품은 꺼졌다, 실체만 남았다”… 얼리 어답터들의 성과
이번 보고서는 토큰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해밀턴 레인(Hamilton Lane),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 KKR 등 글로벌 대형 운용사들이 이미 시장에 참여하며 ‘빅리그’ 진입을 알렸다. 특히 해밀턴 레인은 토큰화를 통해 피더 펀드(Feeder fund)의 최소 투자 금액을 기존 500만 달러에서 2만 달러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낮추며 자산 접근성을 대중화했다.
초기 도입 기업(Early Adopter)들이 꼽은 토큰화의 핵심 이점은 명확하다. 이들은 투명성 및 데이터 추적 개선(66%), 유동성 및 투자자 접근성 확대(61%), 운영 비용 절감(57%) 등 구체적인 경영 성과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토큰화가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수익성과 직결되는 비즈니스 모델임을 시사한다.
■ 수탁사는 ‘질주’, 자산관리사는 ‘관망’… 엇갈린 행보
하지만 시장 전반의 도입 속도는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금융업권별로 온도 차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자산 수탁 및 결제를 담당하는 수탁기관들은 이미 63%가 토큰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30%는 2년 내 도입을 준비하는 등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자산관리(Wealth Manager) 업계는 단 10%만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는 기술적 인프라가 갖춰지더라도, 이를 최종 투자자에게 판매하고 유통해야 할 자산관리 업계가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최대 걸림돌은 ‘규제 리스크’… 혁신 발목 잡는 제도적 공백
토큰화의 효용성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기관이 ‘속도 조절’에 나선 주된 원인은 단연 ‘규제 불확실성’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관의 73%가 규제 불확실성을 토큰화 확산의 최대 장벽으로 꼽았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미 기술을 도입해 성과를 보고 있는 얼리 어답터들조차 65%가 규제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예비 도입 기업들의 경우 이 수치는 78%까지 치솟았다.
금융사들이 호소하는 구체적인 난제는 토큰화된 상품의 증권 분류 명확성(65%), 투자자 보호 조치(63%), 거래 표준 프로토콜 부재(53%) 등이다. 기술은 앞서 나가는데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오히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림보(Limbo)’ 상태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글로벌 금융 시장이라는 거대한 슈퍼탱커가 토큰화라는 새로운 항로로 완전히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기술의 완성도보다 규제의 명확성이 선결 과제임이 이번 조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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