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범죄 도구 아닌 디지털 시대의 필수재"... a16z가 반박한 '블록체인 프라이버시' 6가지 오해

| 한재호

최근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 제재 등 암호화폐 프라이버시 기술에 대한 규제 당국의 감시가 강화되는 가운데, 실리콘밸리의 유력 벤처캐피탈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의 암호화폐 부문인 'a16z 크립토'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분석을 내놓아 주목된다.

a16z 크립토의 데이비드 스베르들로프 규제 총괄 파트너와 에이든 슬라빈 정책 파트너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블록체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오해가 기술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며 업계에 퍼진 6가지 신화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프라이버시는 범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웹3(Web3) 대중화를 위한 필수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오해 1&2: 인터넷과 프라이버시의 관계

보고서는 현대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인터넷 때문에 발생했다는 첫 번째 오해를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박했다. 19세기 전신(telegraph)과 전화의 발명 당시에도 사생활 침해 논란은 존재했으며, 오히려 이러한 기술 발전이 프라이버시 권리 확립의 촉매제가 됐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은 프라이버시 없이도 잘 작동한다"는 두 번째 신화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초기 인터넷이 전자상거래(E-commerce)의 장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HTTPS와 같은 암호화 프로토콜이 도입되어 신용카드 정보 전송 등을 안전하게 보호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오해 3: 블록체인은 완벽한 익명성을 보장한다?

대중의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인 '블록체인의 익명성'에 대해서도 명확히 선을 그었다. 저자들은 "퍼블릭 블록체인은 '익명(anonymous)'이 아닌 '가명(pseudonymous)'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지갑 주소는 일련의 문자로 되어 있어 신원을 바로 알 수 없지만, 일단 특정 사용자와 주소가 연결되는 순간 모든 과거 거래 내역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이는 마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전 세계에 공개되는 것과 같아, 오히려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이 기존 금융보다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해 4: 프라이버시 기술은 범죄의 온상이다

데이터는 '프라이버시=범죄'라는 등식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암호화폐를 이용한 불법 자금 거래 비중은 전체의 1% 미만으로, 현금 등 전통 금융 수단에 비해 현저히 낮다.

보고서는 "오히려 블록체인의 투명성은 법 집행 기관이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범죄자들은 추적이 용이한 블록체인보다 현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해 5: 범죄 예방과 프라이버시는 양립할 수 없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인 규제와 프라이버시의 딜레마에 대해, a16z는 기술적 해법을 제시했다. 바로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s)'이다.

영지식 증명을 활용하면 사용자가 자신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고도(Zero-knowledge), 자금이 불법적인 출처에서 오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다.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가 제안한 '프라이버시 풀(Privacy Pools)'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규제 당국이 요구하는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준수할 수 있는 '제3의 길'로 평가받는다.

오해 6: 프라이버시는 금융 거래에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프라이버시 기술이 금융을 넘어선 다양한 영역에서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신원 증명(Digital ID)에서 불필요한 정보 노출 없는 성인 인증 △게임 내 히든 스테이지나 아이템 정보 보호 △민감 데이터를 다루는 AI 모델 검증 △보복 없는 투표 시스템 구축 등 웹3 전반의 혁신을 위해 프라이버시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a16z 측은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입법 등이 가시화되는 지금이야말로 오해를 걷어내고 기술적·법적 도구를 구축해야 할 때"라며 "진정한 도전은 보안과 프라이버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지원하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