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포스트 칼럼] '내러티브(Narrative)'라는 달콤한 독배… 웹3의 착각과 오만

| 권성민

지금 웹3 시장은 '1조 달러의 역설'이라는 거대한 모순에 빠져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몰리고 혁신적인 코드가 쏟아지지만, 정작 대중의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기술은 우주를 향해 가는데, 그 기술을 파는 방식은 여전히 '입담'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큰포스트가 지난 9년간 국내 대표 웹3 미디어로서 최전선에서 목격한 수많은 프로젝트의 흥망성쇠는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프로젝트가 망하는 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전략의 부재'를 '그럴듯한 내러티브'로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업계에는 이른바 '내러티브 만능주의'가 만연해 있다. 사업의 본질(Fundamental)보다는 "이번 메타는 뭐야?", "다음 내러티브는 RWA야?"라며 유행하는 간판 바꿔 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실수 차원을 넘어선, 산업 전체를 좀먹는 '전략적 공백'이다. 이제 뼈아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왜 수많은 천재들의 프로젝트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가?

실패하는 웹3 마케팅의 5가지 죄

많은 프로젝트가 마케팅을 '잘 팔리는 소설 쓰기' 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승패는 코딩을 시작하기도 전, 책상 위 전략 단계에서 이미 갈려 있다.

첫째, '쏠림 현상'이라는 자살행위다. "디파이(DeFi)가 뜬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레이어2 전쟁이다" 하면 똑같은 간판을 내건다. 남들이 만든 내러티브에 편승하는 것은 레드오션에 스스로 뛰어드는 격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빈 공간(White Space)'을 찾아 깃발을 꽂는 것이 전략의 기본이다. 이미 50개의 치킨집이 있는 골목에서 "우리 닭은 서사가 다르다"고 외쳐봐야 소용없다.

둘째,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푼다는 착각이다. "기술이 좋으면 알아줄 것"이라는 개발자 특유의 오만이다. 고객은 당신의 블록체인 기술이나 거창한 세계관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당장의 고통을 해결해 주길 원할 뿐이다. 대중이 느끼지도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니, 마케팅 팀은 멀쩡한 사람에게 "당신은 아픈 곳이 있다"고 설득해야 하는 촌극을 빚는다.

셋째, '숙제'하듯 해치우는 보여주기식 전술이다. 전략적 맥락 없이 인플루언서에게 돈을 뿌리고, 의미 없는 행사를 연다.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되어야 하는데, 그저 점만 찍다가 끝난다. 통합된 전략 없이 파편화된 내러티브는 예산 낭비일 뿐, 브랜드 자산으로 남지 않는다.

넷째, 커뮤니티를 'CS 센터'로 전락시켰다. 웹3에서 '커뮤니티'는 성역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어떤가. 프로젝트의 비전을 공유하는 '팬덤'은 온데간데없고, 텔레그램 방은 "코인 가격 왜 떨어지냐", "에어드랍 언제 주냐"는 불만 접수처가 된 지 오래다. 관리자들은 비전을 전파하는 대신 불난 민심을 잠재우는 소방수 노릇만 하고 있다.

다섯째, 파이프라인 없는 '술자리' 행사다. 전 세계를 돌며 열리는 화려한 컨퍼런스들. 샴페인을 터뜨리며 '업계 분위기'를 즐기지만, 다음 날 남는 건 숙취뿐이다. 명확한 비즈니스 목표(KPI)와 치밀한 사후 관리(Follow-up)가 없는 행사는 비싼 사교 파티에 불과하다. 그날 밤 교환한 명함이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영상의 배임이다.

'소설'을 찢고 '냉철한 전략'으로

이제 '가짜 내러티브'에 취해있던 술잔을 내려놓을 때다. 유행 좇기의 함정에서 탈출하려면 사고방식을 180도 바꿔야 한다.

먼저 남의 내러티브를 베끼지 말고 '빈 공간'을 선점하라. 남들이 무시하는 고객, 남들이 해결하지 못한 고통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파고들어라. 누구나 아는 시장에서 1등을 하려 하지 말고, 당신만이 1등 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서사다.

그리고 책상 밖으로 나가라. 구글 검색으로 얻은 데이터는 가설일 뿐이다. 현장에 가서 진짜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로 당신의 이야기가 먹히는지 검증받아야 한다. 탁상공론(卓上空論)으로 쓴 소설은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는다.

마지막으로 허영 지표(Vanity Metrics)에 속지 마라. 트위터 팔로워 수나 디스코드 접속자 수는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 시장 점유율, 유효 고객의 확보, 매출 전환율 등 비즈니스의 본질을 증명하는 숫자만이 살길이다.

토큰포스트가 지켜본 지난 9년, 시장은 냉정했다. 남들이 만든 유행(내러티브)을 뒤쫓아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생존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자신만의 영토를 구축한 전략가들이었다. 웹3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그 기회는 떼로 몰려다니는 '레밍'들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한 곳을 꿰뚫어 보는 '전략가'들에게만 허락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