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0.75%로 인상하며 지난 30년간 글로벌 금융 시장을 지탱해온 ‘초저금리 엔화’ 시대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금리 수준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인접국의 통화 정책 변화를 넘어 전 세계 자산 시장의 밑바닥을 흐르는 5조 달러 규모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줄이 마르기 시작했다는 엄중한 경고다. 글로벌 유동성 축소가 불러올 파고가 우리 경제와 자산 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지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엔화를 빌려 미국 주식이나 신흥국 채권, 그리고 암호화폐 같은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일본의 싼 엔화는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일본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르면 이 거대한 자금 흐름은 역류할 수밖에 없다. 빌린 돈의 이자 부담이 커진 투자자들이 부채를 갚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하면, 그 직격탄은 유동성이 풍부하고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 시장에 가장 먼저 떨어지게 된다.
이미 시장은 일본의 금리 인상이 암호화폐 시장에 어떤 파괴력을 미치는지 두 차례나 목격했다. 2024년 7월 인상 직후 비트코인이 26% 폭락했고, 2025년 1월에도 또다시 25% 주저앉으며 시장은 공포에 휩싸였다. 두 번의 인상과 두 번의 폭락을 거쳐 도달한 0.75%라는 금리는 투자자들이 심리적으로 견딜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결정이 암호화폐 시장의 ‘메가 크래시’를 촉발하는 마지막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물론 금리 발표 직후의 시장 반응은 예상보다 차분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를 안심의 신호로 읽어서는 안 된다. 5조 달러라는 거대 자금의 물줄기가 방향을 트는 데는 필연적으로 시차가 발생한다. 엔화 대출로 레버리지를 일으켰던 기관들이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오늘의 고요함은 오히려 더 큰 폭풍을 예고하는 전조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 글로벌 유동성 파티는 끝났다. 헐값에 돈을 빌려 자산을 불리던 시대가 가고, 철저한 리스크 관리만이 생존을 담보하는 엄혹한 환경이 도래했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일본발 유동성 위축이 국내 금융 시장 전반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투자자들 역시 과거의 수익률에 매몰되지 말고 거대한 유동성의 역류가 시작되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의 거대한 변곡점 앞에서 준비되지 않은 낙관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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