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포스트 칼럼] 편리함보다 ‘통제권’…회의실로 번진 ‘디지털 주권’ 전쟁

| 권성민

회의실이 전쟁터가 되었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발표는 단순한 IT 정책의 변화가 아니다. 프랑스는 2027년까지 공공 부문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즈(Teams), 줌(Zoom) 등 미국산 화상 회의 툴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빈자리는 프랑스 클라우드 기업 아웃스케일(Outscale)이 호스팅하는 오픈소스 기반의 자체 솔루션 ‘비지오(Visio)’가 채우게 된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미국 툴이 더 편하고 기능도 좋은데 굳이 왜?” 정답은 화질이나 사용자 경험(UX)에 있지 않다. 이것은 '누가 통신의 인프라를 지배하는가’에 대한 싸움이다.

데이터는 AI의 연료이자 권력이다

프랑스와 유럽연합(EU)이 이토록 강경하게 나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화상 회의 툴은 이제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에너지, 반도체, 통신망과 같은 ‘국가 안보 위험’ 카테고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모든 회의는 데이터, 메타데이터, 녹취록, 그리고 조직의 기억(Institutional Memory)을 생성한다. 과거에는 이것이 단순히 ‘기록’에 불과했지만, AI 시대에는 거대 언어 모델(LLM)과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발전시키는 핵심 ‘연료’가 된다.

만약 유럽의 공공 데이터와 회의 기록이 미국 서버에 저장되고 미국 기업의 AI를 살찌우는 데 쓰인다면, 유럽의 디지털 미래는 영원히 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통신 데이터를 로컬(자국)에서 호스팅하고 처리함으로써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AI 가치 창출의 주도권을 유럽 내에 묶어두려는 산업 전략을 택한 것이다.

편리함보다 ‘전략적 통제’를 택하다

지난 수십 년간 글로벌 소프트웨어 시장의 공식은 간단했다. “미국이 만들고, 유럽이 쓰고, 모두가 효율성을 누린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이 공식은 깨졌다. 미국 기업들은 자국 법률(예: CLOUD Act)의 적용을 받으며, 이는 유럽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및 데이터 주권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지정학적 제재로 인해 특정 국가에 대한 서비스가 하루아침에 중단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중립적인 플랫폼’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이제 조달 시장의 핵심 변수는 “어떤 소프트웨어가 더 기능이 좋은가”가 아니다.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접근이 정치적 무기가 된다면 우리는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과거에는 편집증처럼 들렸던 이 질문이, 이제는 필수적인 리스크 관리가 된 셈이다.

파편화되는 엔터프라이즈 스택

우리는 지금 실시간으로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스택(Stack)이 쪼개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이 분열은 UX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각 진영이 느끼는 ‘위협 모델’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등 주요 기관들이 이미 줌을 비지오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흐름의 실증적 증거다.

소프트웨어는 더 이상 생산성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 회복 탄력성 계획의 일부가 되었다.

블록체인과 웹3 업계가 외쳐온 ‘탈중앙화’와 ‘데이터 주권’의 가치가 이제 국가 단위의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새로운 권력의 지도에서, 데이터의 위치는 혁신만큼이나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프랑스의 이번 결정은 다가올 ‘데이터 국지전’의 서막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