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암호화폐 산업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토큰포스트와 김형중 교수가 한국 암호화폐의 뿌리를 찾아 개척자들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록하는 「한국 암호화폐 개척자들」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매주 공개되는 에피소드 중 본문에는 일부 핵심 내용만 담았습니다. 더 깊고 방대한 이야기는 frontier.tokenpost.kr 에서 확인해 보세요. [편집자주]
싱귤래리티에서 조교 역할을 마치고 돌아온 유영석은 다시 업스타트의 본업으로 돌아왔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PG사를 통해 카드 결제 시스템을 붙이려던 계획이 난관에 부딪혔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모든 카드사와 직접 협상을 해야 했다. PG사보다 훨씬 보수적인 곳들이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원래 PG사가 맡아주던 일들까지 직접 처리해야 하니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업스타트 같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결제 시스템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행히도 그가 코빗을 설립한 2013년 7월 이후, 업스타트를 포함한 크라우드펀딩 기업들에 카드 결제가 하나둘 허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까지의 길은 험난했다.
텀블벅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카드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크라우드펀딩의 핵심은 온라인 결제였다. 카드 없는 크라우드펀딩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었다. 텀블벅은 PG사와 끈질기게 협상했다. 후원자가 홈페이지에 입력한 카드 정보를 모아 PG사로 전달하고,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텀블벅이 떠안겠다는 구조를 선택했다. 그만큼 카드를 붙이는 일은 어려웠다.
2013년,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건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스타트업 생태계는 정책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위기와 달리 현장은 빠르게 달라지지 않았다. 규제의 강도는 조금 느슨해졌지만, 공무원들은 여전히 위험을 감수하며 책임질 결정을 내리길 꺼렸다.
한편 2011년, 치과의사였던 이승건은 이태양과 함께 앱 개발에 뛰어들었다. 공급자에게 필요할 거라 믿었던 서비스는 정작 사용자들에게 외면당했다.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뒤였다. 2013년 4월, 이승건과 이태양은 비바리퍼블리카를 설립했고, 이번에는 철저히 수요자의 관점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 결론이 바로 '간편 송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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