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스타크넷(Starknet)의 네이티브 토큰 STRK가 27.5억 달러(약 3.7조 원) FDV(완전희석가치)로 시장에 상장됐다. 크립토 업계 최고의 투자사들이 줄을 섰다. 패러다임(Paradigm), 세쿼이아(Sequoia), 판테라(Pantera), 폴리체인(Polychain), 그리고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유치한 자금만 2억 8,200만 달러(약 3,800억 원), 마지막 라운드 기업가치는 80억 달러(약 10.8조 원)에 달했다.
그로부터 1년. STRK의 현재 가격은 0.05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사상최고가(ATH) 대비 98% 이상 하락이다. 한때 '차세대 이더리움 L2의 본좌'로 불리던 프로젝트가 사실상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들
3,800억 원의 투자금과 10조 원대의 기업가치가 만들어낸 현실은 이렇다.
일일 수수료 수입: 약 2,000~5,000달러. 하루 매출이 300만700만 원 수준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2024년 초만 해도 스타크넷의 일일 수수료는 20만 달러(약 2.7억 원)를 넘었다. 현재 수치는 당시의 12%에 불과하다.
TVL(총 예치 자산): 약 2억 9,000만 달러.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그 대부분은 스테이킹된 BTC 자산이다. 실제 유기적(organic) 디파이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프로토콜을 이용하며 형성된 TVL이 아니라, 인센티브에 의존한 수동적 자산이 쌓여 있는 것이다.
시가총액: 약 2.5억 달러. 마지막 투자 라운드 기업가치 80억 달러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에어드롭 이후, 모든 것이 무너졌다
변곡점은 명확했다. 2024년 초 대규모 에어드롭이었다. 130만 개 지갑에 수억 개의 STRK 토큰이 뿌려졌다. 에어드롭 파머(farmer)들이 활동 지표를 끌어올렸던 시절, 스타크넷은 마치 번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수료 수입 20만 달러, 활발한 온체인 트랜잭션…
그러나 공짜 토큰을 받자마자, 파머들은 떠났다. 활동도 함께 증발했다. 에어드롭은 일시적 관심을 만들었을 뿐, 지속적인 사용자를 만들지 못했다. 이후 수수료 수입은 99% 가까이 급락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끝나지 않는 물량 폭탄
더 고통스러운 것은 토큰 언락(unlock) 스케줄이다. 매월 약 1억 2,700만 개의 STRK 토큰이 초기 기여자 및 투자자에게 풀린다. STRK 가격이 98% 폭락한 지금도 이 물량의 가치는 월 약 600만 달러(약 80억 원)에 달한다.
시가총액 2.5억 달러짜리 토큰에 매달 600만 달러의 매도 압력이 쏟아지는 구조다. 수요는 바닥인데 공급은 멈추지 않는다. 전형적인 '죽음의 나선(death spiral)' 구도다.
초기 기여자와 투자자가 전체 공급량의 약 38%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언락은 2027년 중반까지 계속된다. 시장이 이 매도 압력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의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 한, 가격 회복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기술은 진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자. 스타크넷의 기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은 실재하는 기술이다. STARK 증명 시스템은 확장성과 보안성 면에서 업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2025년에도 스타크넷은 꾸준히 기술적 진전을 이뤘다. v0.13.5에서는 블롭(blob) 압축을 통해 수수료를 더 낮췄고, v0.14.0에서는 분산형 시퀀서를 도입하며 블록 시간을 30초에서 6초로 단축했다. BTC 스테이킹 기능까지 추가하며 비트코인 디파이(BTCFi) 영역으로의 확장도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같은 곳에 있다.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300번째 L2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이더리움 L2 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다. Arbitrum, Optimism, Base, zkSync, Scroll, Linea… 수십 개의 L2 체인이 제한된 파이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기술적 차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용자가 실제로 쓰고 싶은 애플리케이션, 돌아올 이유가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스타크넷은 EVM 호환이 되지 않는 독자적 아키텍처(Cairo 언어)를 선택했다. 기술적으로는 더 우수한 접근일 수 있지만, 개발자 유입 장벽을 높이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솔리디티(Solidity)로 쌓아온 이더리움 생태계의 방대한 개발자 풀을 활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빠르고, 아무리 싸고, 아무리 안전해도, 사람들이 쓸 앱이 없으면 체인은 텅 빈 고속도로에 불과하다. VC 자금이 아무리 많아도 PMF(제품-시장 적합성)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한국 투자자에게 주는 교훈
스타크넷의 사례는 한국 크립토 투자자들에게 여러 시사점을 준다.
첫째, '네임밸류 함정'에 주의해야 한다. 패러다임, 세쿼이아 같은 이름이 투자했다고 해서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밸류에이션은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한 진입 가격을 의미할 수 있다.
둘째, 토큰 언락 스케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지속적인 물량 출회가 예정된 토큰은,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가격 방어가 어렵다. 초기 투자자들의 물량 해제 일정은 공개 정보이므로 투자 전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셋째, 에어드롭 이후의 활동 지표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에어드롭 전후의 온체인 데이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일시적 파밍 수요와 실제 사용자 수요를 구분하지 못하면, 허상에 투자하게 된다.
스타크넷은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언락 스케줄도 그렇다
스타크넷이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BTC 스테이킹을 통한 BTCFi 전략, 프라이버시 기능 도입, SN Stack을 통한 앱체인 확장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기술적 토대는 여전히 업계 최상위 수준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매달 쏟아지는 1억 2,700만 개의 토큰 언락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술이 수요로 전환되지 않는 한, STRK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크립토 시장의 오래된 격언이 다시 한번 증명되고 있다. "기술은 해자(moat)가 아니다. 사용자가 해자다."
본 기사는 투자 권유가 아닌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암호화폐 투자는 높은 변동성과 위험을 수반하며, 투자 판단은 본인의 책임입니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