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현지시간),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약 1시간 20분 동안 전 세계 수천만 이용자가 자기 돈을 사고팔거나 보내는 것은커녕, 잔고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일부 이용자의 화면에는 잔고가 '0원'으로 표시되기도 했다. 내 통장에 돈이 있는데 은행 문이 잠긴 것과 같은 상황이다.
코인베이스는 "기술적 문제를 조사 중이며 고객 자금은 안전하다"고 안내했다. 거래소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들어온 익숙한 멘트다.
We are aware that customers may be unable to buy, sell, transfer on https://t.co/ohqDivlp6Y at this time. Our team is investigating this issue and will provide an update. Your funds are safe.
— Coinbase Support (@CoinbaseSupport) February 12, 2026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이 장애는 코인베이스가 시장에 분기 실적을 공개하는 바로 그 날에 벌어졌다.
실적은 어땠나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나빴다. 4분기 순손실이 6억6,700만 달러(약 9,600억 원)에 달했다. 직전 8개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던 회사가 갑자기 대규모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매출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 줄었고, 증권가의 예상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핵심 수입원인 거래 수수료 매출은 전년 대비 37%나 급감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2025년 10월 정점(약 12만6,000달러)에서 절반 가까이 빠지면서, 거래소를 찾는 개인투자자들의 발길이 뚝 끊긴 탓이다. 주가(COIN)는 이날 장중 약 8% 하락했고, 올해 들어서만 45% 이상 증발했다.
CEO의 행보는 별개지만, 씁쓸하다
장애 사건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공개된 또 다른 소식이 투자자들의 기분을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반에크(VanEck)의 매튜 시겔 리서치 총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코인베이스 창업자이자 CEO인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2025년 4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약 9개월간 자사 주식 150만 주 이상을 매각했다. 총액은 약 5억5,000만 달러, 한화로 약 7,900억 원이다.
이 매각은 미국 증권법상 내부자가 미리 일정을 정해놓고 주식을 파는 제도(Rule 10b5-1)에 따른 사전 계획 매도다. 장애와 시기를 맞춰 팔았다거나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주가가 고점(420달러) 대비 60% 넘게 빠지는 동안, CEO는 매달 평균 880억 원어치씩 꾸준히 현금화하고 있었다. 일반 투자자들이 떨어지는 주가를 바라보며 버티는 사이, 회사의 최고책임자는 이미 출구 전략을 실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이 광경이 투자자에게 신뢰를 주기는 어렵다.
진짜 문제: 왜 내 돈을 내 맘대로 못 쓰나
CEO의 주식 매각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자. 이번 장애가 드러낸 핵심은 간단하다. 중앙화 거래소에 돈을 맡기면, 내 돈이 내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코인베이스가 "기술적 문제"라고 하면 기다려야 하고, "복구됐다"고 하면 그제야 쓸 수 있다. 내 자산인데 접근 권한은 거래소에 있다. 이것은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다.
이 이야기가 먼 나라 일처럼 들리는가. 한국 투자자들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2021~2022년 루나·테라 사태 때, 국내 투자자 수십만 명이 하루아침에 투자금 전액을 잃었다. 당시에도 "시스템은 안전합니다"라는 안내가 나왔고, 정작 내부에서는 이미 문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FTX도 마찬가지다. 한때 기업가치 320억 달러(약 46조 원)로 평가받던 세계 2위 거래소가 2022년 11월 단 며칠 만에 파산했다. 고객 자금이 내부적으로 유용되고 있었다는 진실이 드러난 건 문이 닫힌 다음이었다.
암호화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 금융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돼 왔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보자. 미국 16위 규모의 은행이 48시간 만에 문을 닫았다.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찾으려 하자 은행 금고가 비어 있었다.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의 일부만 실제로 보관하고 나머지는 투자에 돌리는 '부분지급준비금' 제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모두가 동시에 "내 돈 돌려달라"고 하면 시스템이 버티지 못한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도 같은 구조였다.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이 무너지며 전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에게 돌아갔다.
SVB, 리먼, FTX, 루나. 이름과 시대는 다르지만 구조는 똑같다. 내 돈을 제3자에게 맡기고, 그 제3자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구조. 평소에는 작동하지만, 위기 때는 가장 먼저 무너지는 구조다.
"내 키가 아니면 내 돈이 아니다"
암호화폐 업계에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Not your keys, not your coins(내 키가 아니면 내 코인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암호화폐는 '프라이빗 키(private key)'라는 일종의 비밀번호를 가진 사람이 진짜 주인이다. 코인베이스 같은 거래소에 코인을 맡기면, 그 비밀번호는 거래소가 갖고 있다. 내 이름으로 된 계좌가 있지만, 실제로 돈을 움직일 수 있는 열쇠는 거래소 손에 있는 것이다.
반대로, 개인이 직접 프라이빗 키를 보관하는 '자기수탁(self-custody)' 방식을 쓰면 어떤 거래소가 망하든 내 자산과는 무관하다. 하드웨어 월렛(USB 형태의 보안 장치)이나 소프트웨어 월렛을 통해 내가 직접 열쇠를 쥐고 있으면 된다.
물론 자기수탁에도 불편함은 있다. 비밀번호를 잃어버리면 복구할 방법이 없다. 거래소처럼 고객센터에 전화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묻고 싶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내 돈의 통제권을 남에게 넘기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
비트코인은 왜 만들어졌나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다. 은행이 고객의 돈으로 무리한 투자를 하다 무너졌고, 정부는 세금으로 은행을 살려줬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에게 돌아갔다.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제시한 비전은 단순했다. "은행 같은 중간자 없이 개인끼리 직접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고, 누구도 내 돈을 동결하거나 차단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비트코인을 다시 코인베이스 같은 중앙화 거래소에 맡기고, 거래소가 시스템 점검을 한다고 하면 순순히 기다리고 있다. 중간자를 없애기 위해 만든 돈을, 다시 새로운 중간자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괜찮았다, 다음에도 그럴까
이번 코인베이스 장애는 1시간 20분 만에 복구됐다. 자금 유출도 없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왜 내 돈인데, 내가 원할 때 쓸 수 없는가?" 이 질문에 거래소가 내놓는 답은 항상 "기술적 문제"이고 "고객 자금은 안전합니다"이다. FTX도 파산 직전까지 같은 말을 했다.
중앙화 거래소에 자산을 맡기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믿겠다는 결정이다. 그 누군가가 선의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최선을 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순간에 내 돈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다.
필자는 이 말을 수년째 반복해왔다. 내 키가 아니면 내 돈이 아니다. 코인베이스는 그것이 빈말이 아님을 또 한 번 보여줬다.
본 칼럼은 특정 투자 조언을 구성하지 않으며, 필자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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