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의 한 동굴에서 약 5천600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집단 식인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발굴되면서, 선사시대 인류의 생존 양식과 사회적 갈등 양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카탈루냐 고인류학 및 사회진화연구소(IPHES)의 팔미라 살라디에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산맥에 위치한 엘 미라도르 동굴에서 출토된 인간 유해 650점을 분석한 결과, 최소 11명에게서 식인을 나타내는 명백한 해체 흔적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해당 유해는 기원전 약 3700년경의 것으로, 피부를 벗기거나 관절을 절단하고, 뼈를 조리한 흔적 등 구체적인 증거들이 확인됐다.
이러한 해체와 조리 흔적은 주로 칼이나 날카로운 도구에 의한 절단 자국, 불에 그을린 흔적, 뼈의 골수를 추출한 자국 등으로 나타났다. 일부 뼛조각에는 사람의 치아 자국으로 보이는 물림 흔적도 함께 발견돼, 시신 처리 목적이 장례가 아닌 식용을 위한 것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69개의 유해에는 한 개인의 시신을 조각 내 조리하는 전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번 연구는 신석기 시대에도 상당히 복잡한 인간관계와 사회적 갈등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프란세스크 마르지네다스 박사는 이 식인 행위가 단순한 장례 의식이나 극심한 기근의 결과가 아니며, 짧은 시간 안에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인접 공동체 간 충돌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이전에도 확인된 청동기 시대 식인 사건보다 약 1천 년 이상 앞선 것이어서, 인류의 식인 풍습이 예정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베리아반도에는 고대부터 집단 매장, 사후 유해 재배치 등 다양한 장례 문화가 존재해 왔으며, 일부 연구는 인류가 이 지역에서 식인 행위를 해온 역사가 최대 1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본다. 그러나 다수의 유해가 훼손돼 있고, 문화적 맥락 역시 충분히 해석하기 어려운 탓에 그 원인이나 의미를 단정 짓는 데에는 제한이 있다.
이번 발견은 단순한 고고학적 호기심을 넘어서, 인류 사회가 형성 초기부터 서로 간의 경쟁과 폭력,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극단적 생존 전략까지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앞으로 유사한 발굴이 다른 지역에서도 이어진다면, 신석기 시대 공동체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새로운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