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 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착수하면서, 동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에너지 축에서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첫 원전은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추가 발전소는 중국 기업이 맡을 예정이다.
이번 원전 공사는 카자흐스탄 옛 수도 알마티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발하시 호숫가 인근 울켄 지역에서 시작됐다. 착공식은 2025년 8월 8일 열렸으며, 카자흐스탄 원자력청장과 로사톰 최고경영자 등 양국 주요 인사가 참석해 협력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했다. 건설에는 약 140억~150억 달러(한화 약 19조~21조 원)가 투입되며, 완공 목표 시기는 2035~2036년으로 설정됐다.
원자로는 로사톰의 주력 모델인 VVER-1200(가압수형 원자로) 두 기로 구성된다. 이 원자로는 러시아가 해외 원전 수출용으로 주력하는 최신 비등수형 유형으로, 설계 수명은 60년이며 이후 상황에 따라 최대 20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로사톰은 이미 부지 측량과 시추 작업에 들어가 구체적인 건설 위치를 조율 중이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우라늄을 생산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원전은 그동안 전무했다. 옛 소련 시절 핵무기 실험장으로 활용되며 오랜 세월 방사능 피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과거가 원전 개발 추진에 큰 걸림돌이었다. 실제로 약 150만 명이 과거 핵 실험의 여파로 방사능에 노출됐다는 보고도 있다. 그런만큼, 원전에 대한 국민 반감이 컸으나, 2024년 10월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약 70%가 찬성하면서 사업이 본격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원전 프로젝트에서 카자흐스탄 정부가 인접국인 러시아와 중국 기업을 사업자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2차 및 3차 원전은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가 건설을 맡는다. 한국과 프랑스 기업도 수주전에 참여했으나, 카자흐스탄 정부는 러시아와 중국 기업이 가장 유리한 기술 조건과 가격 제안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물리적인 거리 외에도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정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중·러 주도의 원전 개발은 단순한 에너지 사업을 넘어,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 전략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러시아는 이미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원전 사업을 추진 중이며,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원자로 건설을 희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에너지 안보와 경제 성장을 둘러싼 원자력 협력이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