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업들, 1,080조 자사주 매입 승인…AI 투자와 '두 갈래 길'

| 김민준 기자

올해 들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포함된 미국 주요 기업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 승인을 받은 가운데, 하반기에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6월 5일 기준, S&P500 지수 편입 기업들이 승인받은 자사주 매입 규모는 총 7,500억 달러(약 1,080조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6,000억 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LPL 파이낸셜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금융, 정보기술 산업이 전체 승인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중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업종은 2,100억 달러로 가장 컸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공개시장 또는 기타 수단을 통해 자사 발행 주식을 되사들이는 행위로, 유통 주식 수를 줄이고 주가를 방어하거나 주당순이익(EPS)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S&P500이 경기침체 우려로 3월 한때 조정 국면에 진입했을 당시, 기업들은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활용해 1분기에만 2,830억 달러(약 407조 원)를 쏟아부었다. 이는 전 분기 대비 24%,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한 규모다. 특히 애플(AAPL), 메타(META), 알파벳(GOOGL), 엔비디아(NVDA) 등 기술 대기업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이 중 730억 달러를 책임졌다.

자사주 매입은 단순한 주가 부양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자사주 매입이 거래 유동성 및 가격 발견 기능을 향상시켜 지난 20년 동안 개인 투자자들에게 21억~42억 달러 규모의 거래 비용 절감 효과를 안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사주 매입이 시장 전체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자사주 매입이 승인됐다고 해서 실제 집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 환경, 기업의 주가 가치 평가, 경영진의 전략적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최근 S&P500 지수가 상승하며 주가수익비율(PER)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까지 높아진 점, 그리고 인플레이션 및 관세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은 기업들의 보수적 자금 운용을 유도할 수 있다.

한편 자사주 매입을 주도한 주요 기술주들은 올해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에 대규모 예산을 배정하며, 향후 자사주 매입 여력을 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FT), 아마존(AMZN), 알파벳, 메타는 올해 AI 중심의 자본지출 규모를 총 3,000억 달러(약 432조 원)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이는 작년 대비 35% 증가한 수치다.

특히 아마존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2년 이사회가 승인한 자사주 매입 한도 100억 달러 가운데 초기 약 40억 달러는 사용됐지만, 이후 단 한 주도 매입되지 않았다. 대신 기업은 같은 기간 내 자본지출을 630억 달러에서 1,040억 달러로 크게 늘렸다. 이는 기술 투자 확대가 주주환원보다 우선순위로 자리 잡았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이처럼 자사주 매입은 여전히 기업들이 갖고 있는 중요한 자본 배분 수단이지만, 향후에는 AI를 비롯한 핵심 기술 투자로 인해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반기에도 기술주 주가 흐름과 기업 실적, 거시경제 변수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자사주 매입의 실현 여부를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