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시장을 바꿨다… 정책·기업도 움직이는 '슈퍼 개미 시대'

| 연합뉴스

개인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이 증시와 소비시장 모두에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힘없는 소수로 여겨졌던 이들이 이제는 집단적인 목소리와 행동으로 정책을 흔들고 기업까지 바꾸고 있다.

과거 한국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늘 약자의 위치였다. 외국인이나 기관이 매수하면 상승세를 탔고, 반대로 매도하는 종목은 개인이 떠안으며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개미는 호구’라는 인식이 퍼진 이유다. 특히 코스닥 등 중소형 종목에서의 급등락은 큰 손 투자자 중심으로 좌우됐고, 개인이 뒤늦게 따라붙었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개인투자자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이른바 ‘동학개미’로 불린 개인들은 외국인과 기관이 매도한 물량을 적극적으로 받아내며 대규모 주가 하락을 방어했다. 3개월 만에 코스피 지수가 40% 이상 반등하자, 시장에서도 개인이 중요한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기존에 소극적이던 이들이 집단 행동으로 시장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첫 사례다.

이후 개인들의 조직적인 목소리는 여러 제도 개선의 직접적인 동력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공매도 제도와 금융투자소득세다. 공매도는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방식으로 개인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실제로 중단과 재개가 연이어 조정됐다. 금융투자소득세 역시 반발 여론에 밀려 폐지 수순을 밟았다. 최근에는 상장사의 쪼개기 상장(기업가치를 높이기보다는 특정 지분가치를 띄우기 위한 분할 상장), 무리한 증자, 대주주와 관련된 불공정 행위 등에 맞서 당국이 개입하도록 만드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마저 개인투자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달 말 발표된 세제개편안에서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현행 1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높이려 했으나, 이로 인한 실망감에 코스피가 4% 가까이 폭락하자 여당은 즉각 재검토 방침을 내놨다. 1천400만 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 같은 추세는 단지 증시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소비자들 역시 상품과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대체부품 사용을 권장한 자동차 보험 약관 개정안은 소비자 반발에 직면해 당국이 한발 물러서는 일이 있었다. 이제는 기업의 일방적인 마케팅이나 불투명한 서비스가 예전처럼 넘어가지 않는 시대다.

이처럼 주식시장과 소비시장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힘이 조직력과 연대를 통해 실제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들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상장사나 대기업, 정책 당국 모두 개인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받는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다. 개인투자자와 소비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당당한 시장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