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엇갈린 성적표… 소프트웨어는 날고 하드웨어는 주춤

| 김민준 기자

AI 기술의 부상 속에서도 매출 확대에 한계를 드러낸 엔비디아가 시장의 기대를 다소 밑돌았지만, AI를 중심으로 한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호실적을 이어갔다. 최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보고서와 주가 흐름은 AI 전환기에 입지를 강화한 소프트웨어 기업과 그렇지 못한 전통 하드웨어 기업 간의 명확한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주목받은 기업은 역시 엔비디아(NVDA)였다. 데이터센터 부문의 부진 탓에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음에도 주가는 소폭 하락했으며, 중국 수출 관련 불확실성도 여전히 실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연간 6000억 달러(약 864조 원)에 달하는 산업 전반의 자본 지출을 겨냥하고 있다는 발언을 통해 아직 끝나지 않은 AI 성장 기대감을 유지했다.

한편,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는 각 사의 AI 전략이 실제 성과로 연결되며 강세를 기록했다. 몽고DB(MDB), 스노우플레이크(SNOW), 박스(BOX), 오토데스크(ADSK), 일라스틱(ESTC) 등이 잇달아 실적 기대치를 웃도는 성과를 발표하며 주가가 급등했다. 특히 스노우플레이크는 AI 관련 수요 증가를 바탕으로 주가가 크게 상승했고, 오토데스크 역시 분기 실적 호조에 힘입어 9% 이상 뛰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반면 하드웨어 업체들은 엇갈린 실적을 보였다. 델(DELL)은 AI 서버 판매 호조에도 불구하고 향후 실적 전망이 약해 하락세를 면치 못했고, 뉴타닉스(NTNX)와 넷앱(NTAP)의 실적도 기대에 못 미쳤다. HP는 AI PC 수요를 언급하며 매출 증가를 보고했지만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마벨 테크놀로지(MRVL)는 특수 반도체 분야의 불확실성 우려로 급락했으나, 장기 성장성에는 여전히 기대가 남아 있는 상태다.

사이버 보안 섹터에서도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진 않았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CRWD)는 견조한 실적에도 보수적인 가이던스를 제시해 주가가 소폭 하락했고, 센티널원(S)과 오크타(OKTA)는 실적과 전망 모두에서 호조를 보이며 랠리를 이어갔다.

투자 및 인수 소식도 이어졌다. 톰아 브라보는 고객센터 소프트웨어 기업 베리트(Verint)를 20억 달러(약 2조 8,800억 원)에 인수하며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 재편에 나섰고, 유니포어는 오비 AI, 오토노믹8 등을 잇따라 인수해 자동화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또 데이터브릭스는 Tecton 인수를 통해 AI 에이전트 생태계 확장을 예고했다.

한편, AI 확산과 관련해 부작용에 대한 조명도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채팅 AI 이용 중 자살한 10대의 부모가 오픈AI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윤리·법적 논란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스탠퍼드대 연구에서는 AI로 인해 초급 개발자 일자리의 공급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더불어,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xAI가 애플(AAPL)과 오픈AI를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과, 앤트로픽이 저작권 관련 소송에서 합의에 이른 사례 등은 AI 산업이 단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정치·사회 전반에 새로운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구글(GOOGL), 마이크로소프트(MSFT), 오픈AI 등 대형 테크 기업들은 새로운 음성·이미지 생성 AI 모델을 잇달아 공개하며 시장 선도 의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엔비디아는 AI 전용 이더넷 기술 ‘Spectrum-XGS’를 앞세워 또 다른 하드웨어 기회 창출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플랫폼 지배력과 AI 신생 기업들의 기술 속도전 속에서 전통 IT 기업들이 얼마나 빠르게 전략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처럼 AI 산업이 기술적 진화와 더불어 새로운 규제, 윤리 문제, 산업 경쟁 구도까지 동반하면서 더욱 복합적인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가운데, 다음 주에는 세일즈포스(CRM), 브로드컴(AVGO), HP엔터프라이즈(HPE), 유아이패스(PATH), 지스케일러(ZS) 등의 실적 발표가 예고돼 있어 AI 수혜의 폭과 방향성에 대한 단서들이 더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