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은 역대급인데… 브로드컴, AI 특수에도 주가 6% 급락한 이유

| 김민준 기자

AI 열풍을 타고 실적 신기록을 또다시 갈아치운 브로드컴(AVGO)이 정작 주가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을 받았다. 시장의 관심이 이미 높은 주가 수준과 향후 성장 지속 가능성에 쏠린 가운데, 강력한 실적과 가이던스 발표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6% 넘게 하락하는 역설적 흐름을 보였다.

브로드컴은 최근 분기 실적 발표에서 주당 순이익(EPS)이 1.95달러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였던 1.86달러를 웃돌았다. 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8% 급증한 180억 2,000만 달러(약 25조 9,000억 원)로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치 174억 9,000만 달러(약 25조 1,000억 원)를 가뿐히 넘겼다. 특히 AI 칩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74% 폭증하며 82억 달러(약 11조 8,000억 원)를 기록한 점이 실적을 견인했다.

호크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콘퍼런스콜에서 “AI 칩 매출 폭증이 회사 수익성 향상에 큰 효과를 냈다”며, 이로 인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97% 증가한 85억 1,000만 달러(약 12조 3,000억 원)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향후 성장 전망 또한 밝다. 브로드컴은 이어지는 분기 매출 가이던스를 최대 191억 달러(약 27조 5,000억 원)로 제시하며 시장 예상치 183억 달러(약 26조 4,000억 원)를 웃돌았다.

브로드컴은 엔비디아(NVDA)와는 달리 그래픽처리장치(GPU) 개발보다는 맞춤형 AI 칩 설계와 생산을 맡아 시장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파트너로 구글의 텐서 처리장치(TPU)가 있으며, 최근에는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이 구글 TPU를 활용해 100억 달러(약 14조 4,000억 원) 규모의 주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 익명의 신규 고객사로부터도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규모의 주문을 확보하며 AI 수요 증가세를 실감케 했다.

현재 브로드컴의 맞춤형 AI 칩 시장 점유율은 70~8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기관 퓨처럼리서치의 다니엘 뉴먼 애널리스트는 앞으로 몇 년간 AI 칩 시장이 매년 1조 달러(약 1,440조 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며, 맞춤형 칩이 이 가운데 25~30%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브로드컴의 최대 경쟁자는 마블 테크놀로지(MRVL)며, AWS의 트레이니움 칩 개발을 지원 중이다. 그러나 브로드컴처럼 수주와 병행해 대규모 생산 역량까지 갖춘 업체는 드물다는 평가다.

현재 브로드컴은 맞춤형 AI 칩은 물론 데이터센터용 네트워크 칩까지 아우르는 주문 잔고가 730억 달러(약 1,051조 2,000억 원)에 달하며, 이 중 18개월 안에 모두 매출로 전환할 계획이다. 최근 분기 브로드컴의 반도체 솔루션 사업부는 전년 대비 22% 증가한 110억 7,000만 달러(약 159조 4,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인프라 소프트웨어 부문도 26% 증가한 69억 4,000만 달러(약 99조 9,000억 원)를 기록하며 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가는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과 과도하게 부풀었다는 밸류에이션 우려 속에 조정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시장 반응은 브로드컴이 지금의 모멘텀을 얼마나 길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