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청이 10월의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한 인물은 '모국 투자의 선구자'로 불리는 재일기업인 서갑호 회장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정부 대신 서울 외교자산 확보에 나섰던 당대 보기 드문 기부자였고, 국내 산업에 앞장서 투자하며 한국 섬유산업의 성장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1914년 경상남도 울주군 출신인 서 회장은 9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빈손에서 시작한 그는 조그마한 방적공장을 발판 삼아 이후 '오사카방적'과 '히타치방적'을 인수하며 사업을 키웠고, 1961년에는 연 매출 100억 엔을 올릴 정도로 성장해 ‘일본의 방적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일본 고액 납세자 상위 5위 안에 들며 재일동포 경제인 가운데서도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의 성공은 개인의 부를 넘어 조국과 동포사회에 대한 기여로 이어졌다. 1962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도쿄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부지와 건물을 정부에 무상 기증했다. 당시 정부로선 감당하기 어려웠던 도쿄 중심가 고가 토지였지만, 서 회장은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조국에 내놓았다. 해당 부지의 현재 시세는 약 1조 원에 이를 만큼 희소가치가 높다. 또한 1963년, 오사카 공관 이전 당시 필요했던 자금을 또 다른 재일교포 4인과 함께 마련해 정부에 전달했던 사례도 있다.
서 회장은 국내 산업 투자에도 과감했다. 1963년 영등포에 위치한 '태창방직'을 100만 달러에 인수해 '판본방직주식회사'를 세우며 국내 최대 민간 방직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이후 '방림방적(1967년)'으로 사명을 바꾸며 1973년에는 구미에 7,000만 달러 규모의 '윤성방적'을 설립하는 등 섬유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당시 재일교포의 최초 본격적 해외 투자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1974년 윤성방적이 대형 화재를 겪고, 같은 해 1차 석유파동으로 경기가 급락하면서 '사카모토방적'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들이 연쇄 도산하는 위기를 맞았다. 이후 재기를 위해 일본과 동아시아 여러 지역을 오갔지만 끝내 회복에 실패한 그는 1976년, 서울 땅을 밟지도 못한 채 6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공로는 생전뿐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 기려지고 있다.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고, 주일대사관에는 그의 아호를 딴 '동명관'과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2024년 완공된 새 대사관저 또한 '동명재'로 명명되었으며, 매년 11월 1일은 '서갑호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재외동포청은 서 회장의 조국애와 헌신을 높이 평가하며 "그의 기부와 투자는 단순한 재정 기여를 넘어 대한민국의 외교적 위상과 재외동포 사회의 연대감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달의 재외동포는 해당 인물이 조국 발전 또는 거주국 내 한인사회 위상 제고에 공헌한 점을 기준으로 매월 1명씩 선정되며, 서 회장 외에도 임천택, 박병헌, 서세모 등 각계 인사들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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