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H-1B 비자 신청자에게 연간 10만 달러(약 14억 4,000만 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 내 기술 기업과 이민자 커뮤니티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새 규정은 '고급 기술 인력' 유입을 억제하고 자국민 고용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으나, 스타트업에겐 치명적인 악재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H-1B 비자는 데이터 과학,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생명공학 등 고급 전문직 인력이 미국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표적인 비자 제도로, 지금까지는 기본 신청 수수료가 215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새 행정명령을 통해 이 수수료를 약 465배 인상했고, 이는 고용 비용 부담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지적이다.
미 상무장관 하워드 루트닉은 이번 조치가 대형 테크기업들이 값싼 외국 인력을 훈련시키지 않고 미국 내 인재를 채용하도록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에 10만 달러를 지불한 후 직원에게도 급여를 지급해야 하니 기업들은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발언과 달리 엘론 머스크(Elon Musk) 같은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은 H-1B 비자 프로그램이 미국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수단임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본인 역시 과거 해당 비자를 통해 미국에 입국해 시민권을 취득한 사례다.
급작스러운 조치 발표 이후 기업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특히 아마존(AMZN)과 마이크로소프트(MSFT)는 H-1B 비자 소지자 직원들에게 미국 내 체류를 권고하거나, 해외 체류 중인 인력에게 즉시 귀국하라는 안내문을 발송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작년 회계연도 기준, 각각 15,000건 이상의 H-1B 승인 실적을 기록한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었다.
이러한 혼란은 전례 없는 귀국 러시로 이어졌다. 수천 명의 H-1B 및 동반 배우자용 H-4 비자 소지자들이 “10만 달러 수수료 폭탄”을 피하기 위해 직후 미국으로 급히 돌아왔다. 일부는 휴가지에서 급거 귀국행 항공편을 예약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했다.
다행히 백악관은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공보실장 캐롤라인 레빗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번 수수료는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되며, 기존 비자 보유자나 갱신 대상자에게는 부과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새 요금제는 다음 회차 비자 신청부터 적용돼 현재 미국 밖에 체류 중인 H-1B 소지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앞서 루트닉 장관은 해당 수수료가 매년 갱신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어, 미국 내 외국인 취업자들과 기업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정책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스타트업 업계는 특히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와이콤비네이터 CEO 개리 탄은 트럼프의 결정을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무릎 꿇게 하는 조치”라며, “AI 패권 경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혁신가들에게 미국을 떠나라고 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메놀로 벤처스의 파트너 디디 다스 역시 “전 세계 인재들이 미국의 기술산업 육성을 위해 기여해 왔고, 이번 조치는 그 흐름을 단절시킨다”고 경고했다.
이번 수수료 인상은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의료, 회계, 연구개발 등 특화 전문 영역에서도 인력 부족을 야기할 수 있는 광범위한 악영향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H-1B 비자를 통해 입국한 IT 노동자의 비중은 2003년 32%에서 현재 65%를 초과하며 가파르게 증가해 왔다. 반면 미국 내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자의 실업률은 여전히 6.1%에 머무르고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은 이 같은 배경 속에 “내국인 우선 채용”과 “해외 인재 활용”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사회 경제적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고, 당분간 이에 따른 정책 혼선이 지속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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