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H-1B 비자 신청 1건당 약 1억 4,400만 원($100,000)의 신규 일회성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실리콘밸리와 스타트업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이 정책은 그간 미국 성장의 중추로 여겨져 온 해외 인재 유입의 흐름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H-1B 비자 개편안을 발표하며 고액 수수료뿐 아니라 기부금 기반 이민 비자 신설 방안도 함께 내놓았다. 1인당 100만 달러(약 14억 4,000만 원), 법인당 200만 달러(약 28억 8,000만 원)를 상무부에 기부할 경우 신속한 이민 비자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골드카드’ 제도 외에도, 기존 비자 시스템에 대한 전방위 조정이 예고됐다.
미국 내 이민 전문 변호사와 벤처 투자자들은 이번 조치를 놓고 상반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소피 앨콘 변호사는 “차세대 줌, 엔비디아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게 만드는 결정”이라며 “이제 스타트업 창업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창업세’와도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이민자 창업자를 주로 지원하는 VC 언셰클드 벤처스의 마난 메타 파트너는 “지금이 오히려 구시대 시스템을 혁신할 기회”라고 주장한다. 그는 H-1B의 대안으로 O-1 비자나 ‘국제 기업가 규정’과 같은 경로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비자는 뛰어난 역량을 갖춘 인재에게 문호를 넓히는 방향이기에 “실제 혁신을 위한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편, 이 수수료는 신규 H-1B 신청에만 적용되며 기존 연장 신청이나 특정 국가 이익 관련 예외 조항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이민자 창업자에 주로 투자하는 원 웨이 벤처스의 유진 말로브로드스키 파트너는 “구글(GOOGL)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FT)에겐 사무실 청소비 수준이지만, 초기 스타트업엔 사업 자체를 포기할 만큼 커다란 장벽”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H-1B 프로그램의 구조적 결함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높은 수수료와 새롭게 도입되는 임금 기반 추첨 시스템은 빅테크 기업에는 유리하지만 오히려 작은 회사들이 경쟁하는 데 있어 결정적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앨콘 변호사는 “이제 스타트업은 비전이나 지분 배분이 아닌, 고액 연봉으로 인재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H-1B 프로그램은 미국 내 숙련 엔지니어 수급의 핵심 채널로,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외국인 인재를 미국으로 끌어들였다. 실제로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유니콘 스타트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창업자 중 약 44%가 외국 출신이다. 이 가운데 인도 출신이 90명으로 최대 비중을 차지하며, 이는 곧 H-1B 주요 수혜국과 일치한다.
해외 인재 유입은 단순히 인력 수급을 넘어서, 미국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미국이민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H-1B 프로그램 확대는 평균 임금 상승, 특허 출원 증가, 일자리 창출 등을 동반한다고 분석됐다.
그러나 앨콘은 정책 전환이 이미 현장의 창업 기류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AI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던 이민자 고객 대부분이 계획을 보류하거나 철회했다”며 “이는 단순한 ‘브레인 드레인’이 아닌, 미국이 인재를 스스로 밀어내는 ‘브레인 푸시’가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메타는 이에 대해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실험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의 어려운 비자 절차를 거치며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인재들이, 이제 벤처 생태계로 진입해 창업 전선에 뛰어들 것”이라며, “문제는 이들이 미국에 올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와서 무엇을 만들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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