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디지털 재난 훈련' 있었지만…화재에 무너진 행정 시스템

|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해 디지털 재난을 가정한 복구훈련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9월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으로 인해 대규모 행정 서비스 마비 사태를 막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실제 재난 대비 체계가 실효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022년 카카오 서비스 장애 이후 정부는 통신과 디지털 시스템에 대한 재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통신 재난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법령에 따라 민간과 공공데이터센터에 정기적인 재난 대응 훈련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은 연 1회 이상의 긴급 복구훈련과 2회 이상의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데이터센터는 분기별로 시나리오 기반 훈련과 연 1회 이상의 유관 기관 합동훈련을 하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11월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 따른 통신망 마비 상황을 전제로 한 훈련을 장관 주관 하에 진행했고, 삼성SDS 등 민간 기업이 참여해 서비스 이중화와 복구 체계를 점검했다. 당시 훈련에는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여러 정부 부처가 동참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의 핵심 데이터센터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유사한 화재가 발생하자 여러 정부 전산 서비스가 동시에 중단됐다.

이번 화재는 9월 26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했으며,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시작된 불로 인해 전력 공급이 차단되면서 주요 행정서비스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대전경찰청은 10월 2일 현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사고 원인과 책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대응이 이중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주희 의원은 “정부는 민간에는 강한 규제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산 보호에 필요한 내부 대비책은 부실했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가 데이터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향후 재난 대비 계획을 수립하면서, 기존 기간통신사업자 외에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업체와 클라우드 사업자도 사전장애 통보 체계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같은 흐름은 공공 부문의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민간과 달리 공공 시스템은 장애 발생 시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 차원의 정보보호 및 재난 대응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