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삭감이 대통령실 주도의 결정이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공식 확인되면서 과학기술계의 반발과 정치권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겸 부총리는 10월 13일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대통령실 경제수석이었던 최상목 수석의 지시로 주요 R&D 예산을 10조 원 수준으로 줄이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 장관은 이에 대해 “대통령실에 끌려간 측면이 있다”고 밝히며 과기정통부가 초기에는 증액안을 마련했지만, 전면적인 지침 변경에 따라 큰 폭의 감축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과기정통부는 당초 전년 대비 6천억 원 늘어난 25조4천억 원 규모의 R&D 예산을 계획했지만, 2023년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R&D 나눠먹기식 예산 편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특히 같은 해 7월 6일에는 최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직후, 주요 R&D 항목의 예산을 10조 원 수준으로 맞추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예산 조정 방식도 논쟁거리였다. 대통령실은 예산 항목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의 소위 '벽돌쌓기' 방식을 통해 10조 원에서 시작해 점차 증액하는 조치를 주도했으며, 최종적으로 과기정통부의 설득 끝에 21조5천억 원 규모의 예산안이 마련됐다. 이 과정에서 교육기관의 석박사급 연구 인건비 9천억 원이 삭감되고, 중견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이 제외됐다는 점이 내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예산 삭감 결정이 윤 대통령의 2023년 4월 미국 순방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순방 이후 글로벌 기술협력과 첨단 분야 집중 투자가 강조되면서 재정 효율화를 명목으로 기존 내수성 R&D 사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종 예산안에서는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예산이 별도로 증액되기도 했다.
배 부총리는 이런 예산 변경의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며, 과학기술계에 피해를 준 점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또, 최상목 전 경제수석의 지시 경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는 “조사 필요성은 있지만 과기정통부 내부 태스크포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이번 일련의 논란은 정부의 재정 건전성 기조와 과학기술 연구의 자율성과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앞으로도 정부 정책방향에 따라 연구개발 예산이 급격히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향후에는 보다 투명하고 일관된 기준에 따라 예산 편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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