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 '노동시간 완화' 주장에…IT노조 "본질은 경영 실패" 정면 반박

| 연합뉴스

게임업계가 최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법으로 주 52시간제 완화를 거론한 데 대해, IT업계 노동조합이 반대 입장을 강하게 표명하고 나섰다. 노조 측은 현 게임산업의 위기를 장시간 노동 부족에서 찾기보다는 경영 전략의 실패에서 그 원인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IT위원회는 10월 16일 성명을 내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최근 토론회에서 일부 게임업계 경영진이 언급한 ‘노동시간 유연화’ 주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이들은 경영진이 중국의 ‘996 근무제’를 경쟁력 확보의 예로 든 것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996 근무제란 ‘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를 뜻하며, 중국 내에서도 장시간 노동의 대표적 폐단으로 지적돼 왔다.

노조는 이러한 근무제를 경쟁력 확보의 수단으로 언급한 것 자체가 잘못된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에서도 법적으로 금지된 장시간 노동 관행을 국내에 도입하자는 발상은 오히려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창의성과 혁신이 핵심인 게임산업에서 장기적인 성장은 체계적인 개발 환경과 적절한 노동 조건에서 비롯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조는 현재 국내 게임산업이 겪는 어려움은 외부 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경영 판단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쇼츠, IPTV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가 급성장하며 여가 소비 방식이 빠르게 바뀐 상황에서, 이에 맞는 개발 프로세스와 콘텐츠 전략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부재가 결과적으로 산업 전반의 동력을 떨어뜨렸다는 설명이다.

국내 게임산업이 장시간 노동이 아닌 건강한 개발 문화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노조는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게임기업들을 예로 들며, 이들은 충분한 휴식 보장과 노동자 존중 문화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극대화해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단순히 노동 시간을 늘려 성과를 쌓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조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식 간담회 개최를 제안하고, 관계 당국이 정책 수립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IT위원장은 지금의 위기가 단기 수익에만 몰두한 경영 모델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노동 조건 개선과 창의성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사 간 입장 차는 향후 게임산업 정책 논의 과정에서 주요 갈등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정부가 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특정 규제를 완화할 경우, 노동계의 반발과 사회적 논의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